강성모 KAIST 총장(왼쪽부터),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 토머스 짐머 체코 프라하 카를대 총장, 세이케 아쓰시 일본 게이오대 총장 등이 1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16 세계연구대학총장회의’ 기조강연을 듣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강성모 KAIST 총장(왼쪽부터),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 토머스 짐머 체코 프라하 카를대 총장, 세이케 아쓰시 일본 게이오대 총장 등이 1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16 세계연구대학총장회의’ 기조강연을 듣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국가다. 시장조사회사 맥킨지 글로벌인스티튜트에 따르면 2030년 도쿄에 사는 60세 이상 노인은 약 1320만명으로 세계 도시 중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이오대가 추진하고 있는 ‘수명(壽命) 이니셔티브’는 최근 일본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다. 학교 측은 연구를 위해 각 학과에 퍼져 있는 자연과학자, 공학자, 사회과학자를 한데 모았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세이케 아쓰시 게이오대 총장은 1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16 세계연구대학총장회의에 참석해 “의학과 경제학 등을 아우른 공동 연구가 국가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아탑 벗어나 적극적 해결자로

KAIST 주최,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열린 이번 총장회의 주제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글로벌 협력을 통한 교육 혁신’이다. 이날 참석한 130여명의 세계 각 대학 총장·부총장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식량 부족, 세계적 감염병 확산 등 세계적 공통 과제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아 대학이 더는 지식의 상아탑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게이오대가 추진하는 수명 이니셔티브 역시 일본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글로벌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고령화 문제가 개인 문제를 벗어나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전체 고용률과 경기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세이케 총장은 “일본의 고령화 현상은 다른 나라에 전례가 없는 만큼 이 같은 연구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 적잖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청년 취업난과 기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찾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역할로 꼽았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창업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혁신을 유도하고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핵심은 대학과 인큐베이터다. 24개 인큐베이터를 통해 1991년부터 2013년까지 이스라엘에서만 1500개 이상의 기업이 창업했다. 인큐베이터를 졸업한 기업에 대한 민간투자 누적액은 35억달러(약 4조원)에 달한다. 페레츠 라비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총장은 “혁신적 기술을 가졌지만 사업성이 불확실해 투자를 꺼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기초 및 응용연구를 지원하고 학제 간 협력과 기술이전을 장려하고 있다”며 “대학은 창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학문·국경 넘어 머리 맞대야

이날 행사에서 총장들은 빈부 격차 심화, 지구 온난화, 저출산 고령화 등 지구촌이 당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 지역사회뿐 아니라 지역과 학문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학술정보회사인 엘시비어의 지영석 회장은 “에너지·기후변화 등 지속 가능 발전과 관련한 연구 논문 수가 연평균 6.7%씩 늘고 있다”며 “에너지·농업·보건·기후 등 대부분 연구가 공동 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르겐 프뢰멜 독일 다름슈타트대 총장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전환문제는 공학적인 고민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공학과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아우른 학제 간 연구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애너 뉴먼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부총장은 “지난해 세계에서 고국을 떠나 유학하는 학생 수가 4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생 교류가 국제적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Z세대에 맞는 교육 혁신

자크 비오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총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Z세대에 맞는 대학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Z세대란 1995년 이후 출생해 디지털 기술에 능숙하고 이를 소비활동에 적극 활용하는 세대를 말한다. 비오 총장은 “Z세대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주고,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융합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 조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티모시 통 홍콩폴리테크니크 총장은 “홍콩의 21세기 고등교육 핵심은 지식을 어떻게 우리 사회를 위해 쓸 것인가에 있다”며 사회적 책임감이 높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은 2012년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 수학기간을 기존의 3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통 총장은 “늘어난 기간 동안 수학을 더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에게 리더십, 세계 시민이 되는 법을 가르쳐 사회적 책임감을 강화했다”며 “그 결과 98%의 학생이 학업 성적이 올랐다”고 말했다.

박근태/이호기/유하늘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