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한·일 순방일정 앞두고 '고강도 메시지'
日야치 방한 추진…한국 "진정성 있어야" 신중

미국이 과거사 갈등을 빚는 한·일 양국에 본격적으로 '대화하라'는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루 빨리 고위급 접촉을 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갈등을 풀라는 고강도 메시지를 보냈다.

에반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이 관계개선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곧 고위급 접촉을 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양국의 과거사 갈등 국면이 미묘한 변곡점에 올라섰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양국 사이에 고위급 대화 채널이 조만간 가동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메데이로스 보좌관이 구체적인 접촉의 형태와 시기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미국의 '개입' 속에서 물밑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측들이 나온다.

이는 미국이 '야스쿠니 도발'을 일으킨 일본에 한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라고 압박한 것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중순 신임 인사차 미국을 방문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꼬집어' 거론하면서 주변국과 갈등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다각도로 대화를 제의하며 교섭에 나섰을 개연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메데이로스 보좌관의 발언은 역으로 양국간 고위급 대화가 기대만큼 '순항'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데이로스 보좌관이 아직 공표도 되지 않은 고위급 접촉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일종의 독촉 메시지 성격이 있다는 해석이다.

미국의 강력한 주문 속에서 양국이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나 의미 있는 진전은 아직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고위급 접촉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압박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특히 한국 정부로서는 먼저 '도발'을 일으킨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있고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과 조기 대화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당국자는 "아직 양국 고위급이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양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압박에 돌입했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고위급 접촉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미국·일본의 삼각 안보 협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 운용의 주축으로 삼는 미국으로서는 양국의 과거사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을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은 오는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일정을 검토하는 단계여서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주문'을 마냥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집권 2기 첫 아시아 순방길에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여부와 일정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은 워싱턴을 무대로 팽팽한 신경전을 펴고 있다는 상황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지난달 미국을 다녀간 '아베의 책사' 야치 국장이 조만간 방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3일 야치 국장이 조기에 한국을 방문해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안보관련 사항이어서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안보당국자 간의 회동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일본 자민당이 오는 22일 다케시마의 날 기념행사를 정부 주최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다음 달에는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는 등 '뇌관'이 도사리고 있는 점이 문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양측이 만났다가 과거사 문제가 더 악화되면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