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총리 권력기반 강화…'세속주의 약화' 지적도

12일 실시된 터키 국민투표의 개표 잠정집계 결과 헌법개정안이 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터키 NTV 방송은 91%의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59%가 개헌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또 약 5천만명의 유권자중 77%가 투표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정부는 개헌안 통과로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개헌안은 사생활 보호, 노조의 단결권 확대, 아동의 권리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1980년 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현 헌법의 구시대적인 내용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교분리'와 '세속주의'라는 국시의 보루인 사법부와 군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권의 음모라는 지적도 제기됐었다.

26개 항목을 개정한 새 헌법은 헌법재판소, 최고법원, 판검사최고위원회(HSYK) 등 사법부 최상위 기구의 재판관 선출 또는 임명 방식을 바꾸고, 헌재에서 정당 해산을 판결하더라도 의회에 신설되는 정당해산검증위원회의 위원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만 정당이 해산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군 간부를 군사법정이 아닌 일반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가 가입을 추구하는 유럽연합(EU)의 규범에 맞게 헌법을 고친 것이라면서 "이번 개헌은 터키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EU 집행위원회 안젤라 필로테 대변인도 최근 정례브리핑에서 사법기관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확대 등 일부 내용과 개헌 추진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번 개헌이 '올바른 방향의 조치'라고 평가했었다.

그러나 야당은 개헌안이 사법부 통제를 통해 세속주의를 약화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고,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인 정치 지도자들은 개헌안이 소수민족 차별 문제를 도외시했다며 투표 거부를 촉구했다.

야당과 쿠르드인들의 반발에 따라 쿠데타 발생 30주년 기념일이기도 한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시위와 충돌이 잇따랐다.

아나톨리아 통신은 남부 메르신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경찰이 군중을 향해 최루가스를 발사했으며 모두 약 9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