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낮 12시5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공동 기자회견장.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자리를 잡았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싱 총리를 국빈 초청한 의미와 정상회담 내용을 전했다.

"결속,파트너십,우정,친구…."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면서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인도를 달랬다. 그는 "인도는 21세기를 규정하는 파트너이며,글로벌 이슈를 해결하는 핵심 축이고 글로벌 리더"라고 한껏 치겨세웠다. 싱 총리 개인에게는 "인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주도한 현명한 지도자"라면서 "나는 싱 총리를 존경하고 신뢰한다"고 강조했다.

싱 총리는 이에 대해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증진키로 했다"며 "양국 파트너십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굳건한 약속에 깊이 감명받았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날 두 정상이 양국 관계의 재확인과 증진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은 최근 불거진 미묘한 기류를 제거하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상 기류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주 첫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을 방문,'중국 중시,인도 홀대'라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형성됐다. 당시 미 · 중 공동성명은 "남아시아의 평화 안정과 발전을 위해 양국이 공동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뉴델리의 정치분석가인 프렘 샨카르자는 "어떻게 중국이 남아시아의 평화를 책임질 수 있느냐"며 인도의 숙명적 라이벌인 파키스탄과 중국의 밀접한 관계를 언급했다. "중국은 이곳에서 파괴적 역할 이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인도는 최근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인도와 중국 관계는 1962년 이래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데다 영유권 분쟁이 계속된 타왕지역에 최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인도가 자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노동자들을 겨냥해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중국계 노동자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양국은 또 다른 갈등을 빚고 있다.

랄리트 만싱 전 주미 인도대사는 "오바마의 외교 셈법은 조지 부시 전 정부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그가 중국을 무서워 하거나 지나치게 의존적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합법화한 핵기술 관련협정까지 체결하면서 급부상하는 중국에 인도를 대항마로 내세웠던 부시 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인도계로 뉴스위크 국제부문 편집장이자 미 CNN방송의 국제정치 평론가로 유명한 파리드 자카리아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미국은 인도를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인도 측의 우려와 불만을 외교적 수사로만 불식시키진 않았다. 그는 싱 총리의 내년 인도 초청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다고 밝혔다. 특히 양국은 기존의 '상호 · 다목적 경제대화'를 격상한 전략적 '경제 · 금융 파트너십'을 갖기로 합의했다. 오바마 정부가 중국과의 전략경제대화를 격상시킨 것과 보조를 맞춘 셈이다.

양국을 오가면서 해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경제 · 금융 파트너십'에선 거시경제,금융,인프라 개발 부문 협력을 논의하기로 했다. 파트너십 출범을 위해 내년 초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양국은 이 밖에 공동성명에서 △글로벌 안보와 테러리즘 대응 △기후변화 대응 등 그린 파트너십 구축 △무역 및 농업 부문 협력 △교육 분야 협력 △질병통제 및 의료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이날 저녁 싱 총리 부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성대한 국빈 만찬을 열었다. 채식주의자인 싱 총리를 배려해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채소를 올렸다. 만찬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 관계자와 주요 의원,할리우드 스타,유명 인도계 미국인 등 300여명이 초청됐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