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타계하면서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인 케네디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의 영면은 미국에서 앞으로 케네디가와 같은 정치 가문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조종을 울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케네디가는 아일랜드의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왔다. 케네디가 형제 1세대인 4남5녀 가운데 장남은 2차대전 중 전사했고 차남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35대),3남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4남인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은 약 50년간 미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로버트와 에드워드도 대통령에 도전했으나 암살당하거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케네디가 3형제의 이런 정치적 도전과 정치력은 가문의 엄청난 재력에 기반을 뒀다. 케네디가 전체의 재산 규모는 1980년대 총 5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케네디 전 의원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가 주식 투자를 비롯한 금융업,부동산 매매,주류 판매,영화 제작 등으로 불린 막대한 부가 원천이었다. 경제주간지 포천은 조지프의 재산이 1957년 당시 2억~4억달러(현재가치로 15억~30억달러)에 달해 미국에서 9~16위 사이의 거부였다고 추정했다.

케네디가의 정치 명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쇠락한 상황이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롤라인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뉴욕주 상원의원직을 물려받으려다가 정치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포기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전 의원의 막내 아들인 패트릭은 현재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공화제인 미국에선 아이러니하게도 200여년간 귀족제를 연상시킬 정도의 정치명문가들이 정국을 주도해온 게 사실이다. 로지,태프트,롱,유달 가문 등이 성쇄를 거듭했다. 미 최초의 정치 명문가로 꼽히는 애덤스가는 아버지인 존 애덤스 대통령(2대)과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6대)을 배출했고,루스벨트가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26대)과 그의 조카뻘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32대)을 냈지만 이후 명맥이 끊겼다. 최근에는 부시 가문이 '부시 왕조'를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41대)과 아들인 부시 대통령(43대)에 이어 그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2명 이상의 연방의원을 배출한 정치 가문은 7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케네디가가 누린 인기와 영향력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일본 정계엔 유난히 '오보짱(お坊ちん · 도련님)'들이 많다. 오보짱이란 명문가에서 태어나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아 젊은 나이에 의원이 되고 내각에도 진출하는 2,3세 정치인들을 부르는 말이다. 장인들이 수대 째 가업을 이어받듯 이들에겐 정치가 곧 가업인 셈이다.

반세기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룬 이번 8 · 30 중의원 총선에서 당선된 480명의 의원 가운데서도 세습 의원 비율이 15.6%로 2005년 선거 때보다 10% 가까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전 · 현직 일본 총리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정치 세습귀족들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부터 아소 다로까지 1990년대 이후 재임한 11명의 총리 가운데 무라야마 도미이치와 모리 요시로를 뺀 9명이 세습 정치인이었다. 세습 정치 타파를 외쳐온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조차도 정치 귀족가문 출신이다.

총리를 배출한 가문들은 대부분 한 세기 가까이 일본 정권을 주물러온 초특급 귀족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집안이 바로 아소 가문이다. 이 집안의 족보만 가지고도 일본의 근대사를 쓸 수 있을 정도다. 아소 총리의 증조부는 후쿠오카 지역의 대재벌인 아소 탄광 창업주 아소 다키치이며,외증조부는 다이쇼 일왕(현 아키히토 일왕의 조부) 재위 당시 외무 · 내무장관을 지내고 백작 지위까지 받았던 마키노 노부아키다. 외조부는 전후 첫 총리로 일본 현대 정치의 뿌리로 꼽히는 요시다 시게루,장인은 스즈키 젠코 전 총리다.

하토야마 대표의 가문 파워도 아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정치명문가 태생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가문의 힘을 자랑한다. 아베 전 총리는 외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며,친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중의원,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과 자민당 간사장을 지냈다.

일본의 첫 부자(父子) 총리로 기록된 후쿠다의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는 1976년부터 2년간 총리를 지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경우 외가의 후광으로 세습 정치인이 됐다. 고이즈미 가문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차남 신지로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4대째 정치가업을 잇게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들 '오보짱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매우 따가워지고 있다. 좋은 집안에서 곱게만 자라고 젊은 나이에 쉽게 정계에 입문하면서 경쟁력도 잃고,민심도 제대로 못 읽었기 때문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