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반정부 단체의 시위를 너그럽게 용인해오던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강경책으로 선회한 배경은 뭘까?

아피싯 총리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회의장이 반정부 시위대의 발아래 무참히 짓밟히면서 국가와 자신 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이 주된 이유다.

특히 반정부 시위 사태가 더 거세지기 전에 정국을 수습하지 않으면 현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인 관계에서 수줍음을 탈 정도로 온화한 성격의 아피싯 총리는 정상회의가 무산되면서 표정부터 달라졌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단체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 선'(UDD)의 지도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정상회의 무산을 '승리'라고 규정 하자 아피싯 총리는 침울하면서도 굳은 얼굴로 이들을 '공공의 적'이라고 부르면서 강한 적개감을 드러냈다.

아피싯 총리는 "국가에 큰 손실을 끼치고도 이를 '승리'라고 규정하는 이와 무리는 '공공의 적'"이라면서 " '공공의 적'이 또다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결단코 막아내겠다"고 말해 강경책 선회를 예고했다.

그의 발언 직후 태국 경찰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정상회의를 무산시킨 시위 주동자 아리사문 퐁루엥롱을 12일 오전(현지시간)에 체포했다.

현지 신문인 '방콕 포스트'는 또 정부 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보안당국은 UDD의 또 다른 지도자들도 유죄로 인정되면 중형이 선고 될 수 있는 '국가소요죄'와 '반역죄'로 처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피싯 총리는 이어 이날 오후 수도인 방콕과 주변 5개주(州)에 대해 전격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전날 정상회의가 열리던 파타야와 주변 촌부리주(州)에 대해 6시간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해제 한 데 이어 하루 만에 다시 수도권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그는 지난 8~9일 양일간 UDD 지도자 10만여명이 정부청사 주변 등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일 때도 비상사태 선포 를 거부하고 시위대 지도부에게 함께 국정 개혁을 논의하자며 회유책을 제시했었다.

현지 언론과 정치 분석가들은 정국 수습에 실패하면 아피싯 총리 정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그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UDD에 맞서 반(反)탁신 단체인 '국민 민주주의 연대'(PAD)가 나설 경우 민-민 충돌이 발생하면서 내전 상황까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국 출라롱콘 국립대의 티티난 퐁시디락 정치학 교수는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정국 수습이 실패하면 현 정부의 마지막 남은 카드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뿐"이라고 말했다.

(방콕연합뉴스) 전성옥 특파원 sung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