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테마치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게이단렌 회관.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이 곳에서는 한국인들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치 헌금을 재개하기 위한 기준과 스케줄을 마련하느라 임직원들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단순한 정책 제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치문화가 뿌리 내리도록 정치 개혁을 지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 39년을 게이단렌에 몸 담아온 와다 류코 사무총장의 답변은 분명하다. 정치가 바른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기업도 응분의 몫을 담당할 작정이라는 것이다. 금권정치,정경유착이라는 단어의 본고장답게 일본 정가에서는 돈과 관련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엘리트 정치인으로 행세하다 검고 구린 돈에 발목이 잡혀 낙마한 인물도 한두 명이 아니다. 총리 후보 영(0) 순위로 꼽히던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이 그랬고,여장부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도 금전 스캔들로 정치적 대망을 날려 버렸다. 일본 정치권이 깨끗한 토양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꿈처럼 보일지 모를 일이다. 유권자들과 재계의 달라진 자세에 대한 화답인지,일본 정당들의 태도도 급변하고 있다. 선거는 유권자들과의 계약 행위라며 정당마다 깨알 같은 내용의 매니페스토(집권 공약) 입안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자민당의 야마모토 이치타 의원은 "매니페스토야말로 일본의 정치문화를 바꿀 키 포인트"라고 자신하고 있다. 한국의 전경련은 5일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를 거부하겠다고 결의했다. 일본과의 결정적 차이는 정치문화다. 불가사리처럼 검은 돈을 먹어치우고 집안 싸움으로 날과 밤을 지새우는 한국 정치권의 악습이 근절되지 않는 한 정치자금 제공이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대접받는 일은 영원히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