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6기 1중전회)는 15일 후진타오(胡錦濤.59) 국가부주석을 신임 당 총서기로 공식선출했다. 후진타오는 지난 92년 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14大)에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제4세대 지도자로 일찌감치 낙점받은 뒤 10년 만인 16기 1중전회에서 당 총서기에 선출됨으로써 마침내 장쩌민(江澤民) 주석으로부터 차세대 권력지도부를 승계받았다. 후진타오는 내년 3월 국가주석직도 이어받게 돼 명실상부한 `포스트 장쩌민'의지위를 굳혔다. 그러나 당.정.군 요직에 두루 포진하게 된 장쩌민 인맥의 인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보수.개혁파의 틈바구니 속에서 당의 지도력을 공고히 해야 하는 등 당 안팎에서 산적한 난제를 안고 있다. 특히 장 주석이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에 유임된 것으로 보도됨에 따라 여전히막강한 실권을 보유한 장 주석과 친위세력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견제와 섭정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총명함과 온화, 겸손을 두루 겸비한 후진타오는 그동안 장 주석의 '핵심적 지위'를 위협하지 않으려고 언행을 자제하는 등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혁명 1세대의 치열함이나 카리스마를 찾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는 외유내강형 풍모는 가장 위험한 지위인 `지정된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는평가다. 류사오치(劉少奇),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등 미리 지정된 2인자들이 잇단 실각으로 정치생명을 잃었지만 후진타오는 특유의 용의주도함과 인내심으로 인고의 세월을 버텨내고 차세대 권력기반을 다질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섰다. 후진타오는 지난해 10월 '차기 지도자 수업' 관측 속에 영국, 러시아 등 유럽 5개국을 순방하고 지난 4월 미국 등 3개국을 방문했으나 당시에도 장 주석의 입장을고려, 철저하게 저자세 행보를 보여왔다. 안후이(安徽)성 지시(績溪)현이 본적으로 1942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자랐다. 명문 칭화(淸華)대학 수리공정(水利工程)과를 나와정치지도원으로 재직하다 문화대혁명에도 참가했다. 그는 간쑤(甘肅)성 건설위에서 일하던 중 '오늘의 후진타오'가 있게 해준 당 원로 쑹핑(宋平)의 눈에 들어 간쑤성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성위원회 서기로 발탁된뒤 탄탄한 승진가도를 달리게 됐다. 82년에는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에 의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구이저우(貴州) 서기, 티베트(西藏) 자치구 서기 등 '3개 서기직'을 맡게되면서 중국 정치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덩샤오핑은 후진타오를 장쩌민에 이은 차기지도자로 선정,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했다. 후진타오의 가족관계는 칭화대 동문으로 지난 4월 미국 등 3개국 순방시 동행한부인 류융칭(劉永淸) 여사 외에 자녀관계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학창 시절부터 사교 댄스와 문학, 예술 등에 심취해 온 감성적인 인물로 알려져있다. 정치개혁 성향에 대해서는 서방 관측통들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권력 기반조성에 나선 후에야 점진적인 정치.경제 개혁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측근으로는 링후지화(令狐計劃), 판위에(潘岳) 국무원 체제개혁판공실 부주임, 리커창(李克强) 허난성장 등 개혁 성향 인물이 다수 포진해 있다. 당중앙 판공청부주임겸 후진타오 판공실 주임인 링후지화는 후 부주석과의 관계가 '장쩌민-쩡칭훙(당 조직부장)'의 관계에 견줄 만큼 신임을 독차지해 온 '오른 팔'로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의 중앙 제1서기를 거쳐 중앙선전부장, 중앙판공청부주임에 승진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상민특파원 sm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