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기 원자탄개발 사업인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마틴 도이치 전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가 지난 16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유가족들이 21일 밝혔다. 향년 85세. 지난 1917년 1월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후 우여곡절끝에 미국으로 이주,MIT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던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즉각 공표되지 않았다. 타계한 도이치 박사는 핵무기 개발 사업을 도운뒤 34세때인 지난 1951년 한 쌍의 양전자와 전자가 결합해서 생기는 단명(短命) 원자인 `포지트로늄'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물리학자이다. MIT의 핵 실험실에서 그와 함께 포지트로늄 실험을 돕고 그후 도이치 박사에 이어 핵실험실 책임자를 지낸 프란시스 로 전교수는 "포지트로늄의 존재 확인은 그의 커다란 연구 업적이었다"고 밝혔다. 의사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파시스트에 대항,오스트리아의 레지탕스 운동에 참여한뒤 17세때인 1934년에 취리히로 옮겼으며 이듬해인 1935년 다시 미국으로 어머니와 함께 이주했다. 빈 대학 정신의학과의 교수였던 어머니는 정신분석학창시자인 시그문트 프로이트 교수의 마지막 제자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온후 수주안으로 유럽으로 귀국할 의사를 갖고 있었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전쟁이 일어난후 케임브리지에 정착했다. 그는 20살때인 1937년 MIT에서 학사학위를 그리고 24살때(1941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보통 사람들이 11년 걸리는 학위과정을 6년만에 마치는 우수성을 발휘했다. 그는 이후 MIT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국 정부의 비밀허가를 받아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에서 진행된 맨해튼 프로잭트에 참여, 원자탄 개발을 도왔다. 2차대전이 종전된 1946년 MIT로 복귀해 1987년 퇴임할 때까지 까지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는 등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부인 수잔 도이치(63)는 "깨달음과 가르치는 것이 그의 삶의 특징이었다"고 회고했다. (케임브리지AP=연합뉴스) ch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