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역사적인 출범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갈등의 주체는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들이다. 이들이 왜 학살 테러 등 반인류적 범죄단죄를 위한 상설재판소인 ICC의 출범시점에서 갈등을 빚는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미국과 우방국들은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등 각종 현안에서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드러난 갈등의 원인은 미국의 ICC 면책권 요구다. 미국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결혼식장 오폭사건 등에서 나타났듯이 일련의 군사활동에 의해 발생할지도 모를 미군의 실수와 부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이런 일들로 ICC에 제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인도주의를 외치는 미국이 인도주의를 실천하려는 ICC의 활동을 제어하고 나서는 웃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최근 미국의 이같은 우려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럼스펠드는 "ICC는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요원들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면책권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보스니아 평화유지 활동을 끝내겠다"고 우방국들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우방국들은 발끈하고 있다. 초법적 면책권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면책권이 남발될 경우 ICC의 존재는 있으나마나한 것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유럽의회는 ICC 기소 면책권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보스니아 평화유지 활동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결정을 독선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ICC는 핵실험 금지조약,대륙간 탄도미사일 감축협정 등 미국이 비준을 거부한 많은 국제조약들 중 하나일뿐"이라며 미국의 독선적인 처사를 공격했다. 비등하는 국제여론에 미국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계속 고집 부릴 경우 우방국들이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협력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내 일부에서는 이같은 갈등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수완부족'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사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ICC문제와 관련, 부시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갈등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재주를 발휘했다. 미국에 불리한 조항을 나중에 쉽게 수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제 아래 관련 문건에 서명했다. 서명을 한 후에도 의회에 ICC 비준 요청을 하지 않았다. 국내 강경파의 반발도 피하고 우방국들과의 마찰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부시 행정부도 전임자처럼 마음만 먹으면 ICC 문제에서 상당부분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책권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ICC 재판관 전원이 동의할 경우에만 기소될 수 있다는 식으로 피해갈 수 있다. 부시가 애당초 약간만 자세를 낮춰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ICC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리=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7월6일)에 실린 'Right to the brink'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