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칸국제영화제가 21일(현지시간)개막 7일째를 맞으면서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시원하게 바다가 펼쳐진 프랑스의 휴양도시 칸에는 시간이 갈수로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수천여 명의 취재진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예년과 달라진 점은 지난 미국 9ㆍ11 테러 사태의 여파인지 한층 강화된 검문검색. 극장 입구마다 배치된 안전 요원들은 입장객들의 가방 속까지 샅샅이 뒤지며 행여 벌어질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상영된 장편 경쟁작은 총 22편 가운데 14편. 뚜렷한 수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다큐멘터리로는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오른 「보울링 포 콜럼바인」이 평론가와 현지 언론 사이에서 골고루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주목받고 있다. 「보울링 포 콜럼바인」은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충격을 받은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 내 총기 소지와 폭력 문화의 그늘을 생생하게 드러낸 작품. 영화제 일일소식지 중 하나인 「스크린」에 현지 언론들이 매긴 평점에서 평균별 3개 이상의 호평을 받으며 단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마이크 리의 「전부아니면 전무」와 미국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가 비교적 높은 점수를얻었다. 올해 칸영화제는 디지털 영화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미국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이 16일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뒤 `디지털기술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장편 경쟁 부문에도 「10」(이란ㆍ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4시간 파티족」(영국ㆍ마이클 윈터버텀), 「언노운 플레저」(중국ㆍ지아장커) 등의 디지털 영화가 목록에 올랐다. 「ABC 아프리카」 등 그간 꾸준히 디지털 영화를 제작해왔던 거장 감독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여섯 명의 이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10」에서 독특한 실험을 했다. 전체 상영 시간을 10개의 시퀀스로 나뉘어 시퀀스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롱테이크로 기법으로 표현한 것. 자동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등장인물이 나누는대화를 들려주면서 클로즈업 기법으로 잡아 세심한 얼굴의 감정 변화와 표현들을 잡아냈다. 지아장커의 「언노운 플레저」는 몰락한 중국의 중소 공업도시 따퉁에 사는 세젊은이들의 절망과 사랑을 통해 WTO 가입 등 경제적으로 급변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다. 화제작들은 주로 후반에 몰려있는 편이다. 21일 캐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거미」가 공식시사회에서 선보이는 데 이어 영국의 `좌파 감독'인 켄 로치의 「스위트 식스틴」, 프랑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등이 공식상영을 남겨두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의 공식 시사일정은 25일 오후 10시 메인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다. 「취화선」을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걸려 관객들을 손짓하는가 하면 20일 오후 칸 해변가에서 열렸던 한국영화의 밤에는 200여명의 국내외 영화관계자들이 참석해성황을 이루면서 점차 한국영화의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