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세계무역센터 테러 참사가 일어난 지 거의 한달이 돼가는 지금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이 그리 오래 지속될 것 같진 않다. 미국은 지난 1996년 강경한 '회교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탈레반이 이번 테러 사태의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숨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세계 여론도 이미 탈레반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미국의 테러 보복 전쟁을 용인하는 쪽으로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위에선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계속 내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온 나라가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그런데 이제 폭력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보다 덜 위협적인 정권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하나의 가능성은 아프가니스탄의 전 국왕인 자히르 샤가 쥐고 있다. 올해 86세로 40년동안 왕좌를 누렸으나 지난 73년 쿠데타에 의해 왕정이 전복되면서 쫓겨난 인물이다. 현재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왕정복고를 꾀할 생각은 없지만 조국으로 돌아올 의사는 충분히 있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지난주초 아프가니스탄 야당과 반군 지도자들은 자히르 전 국왕의 주재로 로마에서 회의를 갖고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정부 구성에 대해 의논했다. 이들은 1백20명으로 이뤄진 '최고의회'를 구성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곧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원로회의인 '로야 지르가(Loya Jirga)'의 소집으로 이어져 새로운 국가수반을 정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하는 국면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방세계에서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반(反) 탈레반 연합체인 '북부동맹'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자히르 전 국왕과 북부동맹간의 합의가 도출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보다 조화로운 성격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히르 전 국왕은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최대 종족이자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파슈툰' 출신이다. 이에 비해 북부동맹은 우즈벡이나 타지크 등 이란(페르시아)의 이슬람 주종파인 시아파를 공유하는 소규모 종족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자히르 전 국왕은 파슈툰어보다 페르시아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바로 이런 점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히르 전 국왕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지지도는 5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점들은 남아있다. 모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자히르 전 국왕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다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확실한 단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상대로 과도정부가 수립된다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은 국제 사회의 도움 없이는 결코 제대로 복구되기 힘들다. 우선 23년이란 긴 세월동안 전쟁에 시달려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종교 통합의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파키스탄 이란 등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주변 6개국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결코 쉽지는 않은 작업이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밝은 미래를 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최선을 다해 운명을 개척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6일자)에 실린 'After the Taliban'이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