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명에 가까운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지난 11일의 테러 공격으로 미국 전체가 분노를 금치 못한 채 온통 전쟁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가운데 반전(反戰)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화반대론자, 인권주의자, 평화애호자, 학생운동가, 종교단체 등은 2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광기 어린' 전쟁을 재고하고 '평화 연대'를 결성하라고 촉구했다. '평화 연대'는 부시 대통령이 결성을 서두르고 있는 테러 전쟁을 위한 '국제 연대'를 빗댄 말이다. 이들 반전론자 100여명은 이날 워싱턴 시내의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테러 공격 이후 미국에서 아랍계 미국인과 회교도들에 대한 인종적 공격이 400건을 넘어섰다며 이에 대한 항의로 백악관 외곽에서 의사당까지 행진하는 집회를 오는 29일 워싱턴에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테러 사태로 연기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합동 연차총회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던 각종 '반체제 집단'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한다고 미국인의 가정을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시내의 부랑인들을 돕는 가톨릭 구호단체의 회원인 크리스 퍼듀라는 백인 여성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개전 지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전단을 행인들에게 조심스레 나눠 주며 "또다른 폭력을 낳는 폭력은 재고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전쟁 지지 여론이 90%에 육박하는 미국의 현재 분위기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매우 갸날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지난 11일 테러의 주모자로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아프간이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테러 조직 알 카에다의 간부들을 인도하지 않으면 공격할 것이라며 중동과 인도양 등에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89%가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반전론자들은 이와 함께 부시 행정부가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진보적 인사들이 소신을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시민의 자유는 일단 빼앗기면 결코 되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테러 사태 이후 아랍계 시민들에 대한 공격이 부쩍 늘어나자 부시 대통령과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 등이 나서 인종 증오 범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잇따라 경고하고 나섰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