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사상 최악의 테러사태가 전세계 스포츠를 사실상 공황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내는 물론 각국 주요도시에서 예정됐던 국제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파행을 면치 못해 스포츠에 미치는 테러의 '여진(餘震)'이 심각한 수준이다. 또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치러질 예정이던 월드컵축구 예선에서도 오스트리아가 이스라엘 원정 경기를 거부할 방침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는 골프와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풋볼 등 호황을 구가해온 프로스포츠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스포츠산업 전반에 주름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중 한주도 빠짐없이 대회가 열리다시피한 골프는 이번 주말 남녀프로골프 모두 대회를 취소했고 풋볼 역시 정규시즌 경기를 일단 열지 않기로 했다. 메이저리그도 18일(이하 한국시간) 경기를 재개할 계획이나 6일간 시즌이 중단돼 앞으로 포스트시즌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프로스포츠 뿐 아니라 항공기 운항 차질과 테러 공포로 전세계에서 20여개종목의 대회가 취소 또는 연기됐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간 스포츠를 통한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오는 11월3∼11일 뉴델리에서 출범할 예정이었던 아프로-아시안게임은 안전을 우려한 인도정부가 13일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또 19∼23일 미국 테네시 강변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카누선수권이 역시 안전문제로 취소됐고 25∼29일 뉴욕 세계남녀레슬링선수권도 개최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실정이다. ▲골프 = 남자프로골프대회가 모두 취소된데 이어 15일부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대회도 취소됐다. LPGA 타이 보타 커미셔너는 14일 "엄청난 재난이 벌이진 뒤 지난 며칠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대회를 열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LPGA는 남자골프대회가 모두 취소됐는데도 54홀 경기를 36홀로 줄이기로 했을뿐 강행한다는 방침이었으나 대회 하루전 결국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와 캐디, 대회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은 대신 15일 대회 장소인 콜롬비아에지워터골프장 18번홀에 모여 이번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을 갖기로 했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던 박세리(24.삼성전자)는 뉴욕 맨해턴에 살고 있는언니 유리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 대회 취소 이전에 불참을 결정하는 등 선수들의 불안감은 향후 투어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 메이저리그 버드 셀리그 커미셔너는 14일 밀워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2일부터 중단된 경기를 18일 재개하고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경기는정규시즌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보충, 올 시즌 예정된 팀당 162경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테러사태로 취소된 91경기는 정규시즌 종료일(10월1일) 다음날부터열리게 됐으며 10월 29일로 계획된 월드시리즈도 11월로 늦춰진다. 그러나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경우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텍사스주 앨링턴까지 30시간이나 걸리는 1천800마일을 버스로 이동해야하하는 등 각 구단이 장거리 여행을 피할 수 없어 메이저리그 일정 소화가 쉽지 않을전망이다. 한편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가 6일 이상 열리지 않은 것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정규시즌이 1개월 앞당겨 폐막된 이후 처음이다. ▲풋볼 = 미국프로풋볼리그(NFL) 폴 태글리아부 커미셔너는 17일(이하 한국시간)과 18일 열릴 예정이던 정규리그 둘째주 경기를 모두 취소한다고 14일 발표했다. NFL 정규경기가 파업 이외의 이유로 취소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NFL 선수들은 비행기를 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앞으로의 경기에 뛰고 싶지 않다는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82, 87년에 파업으로 경기가 열리지 못했던 때처럼 일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NFL은 팀당 경기를 한 게임씩 줄이거나 와일드카드 경기를 취소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드컵축구 = 오스트리아축구협회가 이스라엘에서 열릴 예정이던 월드컵축구유럽 지역예선 경기를 안정상의 이유로 거부할 방침이다.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보복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베포 모하르트 오스트리아축구협회장은 14일 "선수단의 안전과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경기 장소를 이스라엘에서 중립 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요구할 방침이다. 오스트리아축구협회는 만일 FIFA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경기 자체를 보이콧할 것까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축구 = 유럽축구연맹(UEFA)은 미국 테러사건으로 연기된 유럽프로축구 챔피언스리그 8경기를 내달 11일(이하 한국시간)에 치르기로 했다고 14일 발표했다. 또한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UEFA컵 경기는 이달 21일로 재조정하되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남은 경기는 계획된 스케줄대로 개최키로 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은 UEFA가 경기를 강행한데 대해 불만을드러내고 있으며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은 재경기를 요구하는 등 후유증이 예상된다. ▲NBA = 미국프로농구(NBA)가 중국과 대만에서 시범경기를 치르려던 계획이 취소했다. NBA는 개리 페이튼(시애틀 슈퍼소닉스), 레이 앨런(밀워키 벅스) 등이 포함된시범경기단 '나이키 월드투어 선수단'을 구성해 16일 상하이에서 중국 대표팀과 경기를 치르고 19일에는 타이베이에서 한차례 경기를 가질 계획이었다. 이번 중국과 대만의 시범경기 취소로 특히 NBA에 대한 인기가 높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 NBA 마케팅의 확산을 노리던 계획이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