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총리가 급작스럽게 쓰러진 배경으로는 최근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내각의 21세기 과제로 제시한 교육개혁에 관한 자문기관의 회의 주재,여야 당수토론,주요국(G8) 교육장관 회담,보험 실시 현장방문...할 일이 줄줄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이 때 그는 올해 예산심의 때문에 연일 국회에 출석하느라 지친 몸을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오부치는 2일 새벽 입원하기 직전에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당수,간자키 다케노리 공명당 대표와 당수회담을 갖고 오자와에게 연정 해소를 통보했다.

회담이 끝난 후 오부치 총리는 기자가 질문을 던졌는데도 10초 동안 뜸을 들이며 대답을 매끈히 하지 못했다.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였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자민당의 옛 다케시타 파벌을 함께 결성했던 오자와의 몽니를 받아주지 못하고 매정하게 거절한 데 대해 자못 괴로워했다는 말도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내각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졌다.

뇌경색의 원인을 그의 성격에다 두는 이들도 있다.

생각이 깊고 신중한 그가 괴로움이 있어도 혼자 삭이는 성격 때문에 병을 얻게 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본 정계에서는 이러한 성격의 오부치 총리를 가리켜 흔히 "기다림의 정치가" 또는 "조정형 정치가"라 부른다.

지난 1963년 국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11선 의원으로 자민당 간사장과 부총재,외무장관 등을 거쳐 1998년 총리직에 올랐다.

취임 당시만 해도 지지율이 매우 낮았으나 그 후 인기가 꾸준히 상승,최근에는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부친도 2선의원으로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로 꼽힌다.

지난 1975년 한.일 의원연맹 출범 때 창립멤버로 참가한 이후 20여년 동안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을 맡는 등 보수 색깔을 가지긴 했으나 극우 강경파로는 평가되지 않는다.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