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까지도 당장은 물러나지 않겠다던 수하르토대통령이 21일 전격 하야를
발표했다.

극적인 반전이다.

간밤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수하르토가 32년동안 지켜왔던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일까.

20일이 고비였다.

이날 1백만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됐던 시위는 무산됐다.

대학생들이 의사당을 3일째 점거하고 있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폭동과 약탈도 눈에 띌 정도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대통령궁 내부는 숨가쁘게 돌아갔다.

이날 저녁 늦게 위란토국방장관은 육해공군 군사령관 경찰사령관 등과
긴급회동을 가졌다.

하르모코국회의장이 22일까지 대통령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한 직후다.

대통령궁 주변에서 수하르토와 미국이 담판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자정무렵에 나온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국무장관의 발언은 미국과의
담판설을 확인시켰다.

"정치가로서 용기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게 올브라이트의 발표였다.

이날 저녁 수하르토와 미국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19일 "IMF의 구제금융지원을 보류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자 수하르토측은 과감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선에서
타협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미국은 수하르토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결정적인 전기로 보인다.

수하르토는 자정이 지난 21일 새벽 국무장관 전부통령등 측근들과
회동했다.

그리고 하야를 결정했다.

그가 "강요받은 선택"을 한 것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경제가 미국의
지원없이 하루도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