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레츠".

일본시장의 폐쇄성을 웅변하는 상징어다.

적어도 외국 기업들에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공산품 수입관세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본시장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남아 있다.

국내 기업들끼리 배타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복잡한 유통구조, 바로
게이레츠 관행 때문이다.

요즘 이 철옹성의 한 켠이 뚫리기 시작했다.

선봉장은 미국의 종합 전자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

GE의 병법은 간단했다.

일본의 대형 할인소매업체인 고지마사와 손잡은 것.

몇 단계의 유통과정을 건너 뜀으로써 제품의 소비자가격을 크게 낮췄다.

95년 고지마와 제휴하기 이전 대당 1만달러를 호가했던 냉장고 가격이
4천달러로 뚝 떨어졌다.

세탁기 건조기 등에서도 비슷한 가격혁명이 일어났다.

"대형"에 강한 GE제품이 일본시장에서 날개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고지마와의 제휴 첫달 동안에만 무려 2만대의 각종 제품이 팔려나갔다.

"GE, 국내업계 강타-일본 하늘에 검은 구름 드리우다".

일본 신문들은 이런 류의 제목으로 "GE 쇼크"를 다투어 보도했다.

"GE 쇼크"는 일본열도를 넘어 인도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미국의 경제주간 "포천"지는 최근호에서 밝혔다.

인도에서는 뭄바이에 본거지를 둔 인도 최대의 전자업체 고드레지사와,
필리핀에선 마닐라의 필라코르사와 생산.직판계약을 맺어 각각의 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동종제품을 경쟁사들에 비해 훨씬 싼 값에 판매한 것.

중국의 경우는 지역 분할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땅덩이가 넓고 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점에 착안해서다.

상하이 광둥 쓰촨 푸젠 등 광역별로 제휴사를 선정해 GE의 깃발을 꽂았다.

이 방법 역시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GE의 아시아지역 매출은 64억달러, 이익은 7억5천여만달러에
달했다.

이익률이 무려 11.8%나 됐다.

같은 기간중 업계 전체의 평균 이익률은 5.7%에 불과했다.

GE는 경쟁사들에 비해 2배가 넘는 돈벌이를 한 셈이다.

미국 경쟁업체들과 비교하면 GE의 성적표는 더욱 돋보인다.

예컨대 미국 최대 가전업체인 월풀사의 경우 지난 3년동안 아시아지역에서
1억4천2백만달러의 손실을 안았다.

GE는 아시아시장에 강진을 일으키고 있는 마케팅 전략을 "스마트 폭격
(smart bombing)경영"이라고 부른다.

스마트 폭격은 원래 미 공군의 야간 전법중 하나다.

미사일 등 폭탄을 잔뜩 실은 전투기로 하여금 레이저를 발사, 목표물을
사전 탐지한 뒤 정확히 폭격토록 하는 전법이다.

GE는 이 스마트 폭격법에 착안해 아시아 각국을 시장 특성에 맞춰 정조준
하는 마케팅 공략법을 마련한 것이다.

게이레츠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본시장에서는 비계열 할인소매업체와,
중앙집중적 유통구조를 갖고 있는 인도와 필리핀 시장에서는 전국에
판매망을 갖고 있는 현지 대형업체와 하청 생산 및 공급계약을 맺는 식으로.

반면 지역별로 상권이 판이한 중국에서는 각 지역별 유력 업체들을 발굴,
현지 생산.판매처를 개설해 "재미"를 보았다.

GE의 이같은 전략은 요즘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생산 및
판매 표준화"전략과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GE 경영진은 해마다 각국의 시장 특성을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매달린다.

그 결과에 따라 시장별로 제품.브랜드.생산설비.마케팅.판매 등의 전략
요소를 적절히 배분한다.

현지 경쟁업체들의 품질 등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스마트 폭격에 나서는 것이다.

세계 전자업계에서 GE를 새로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게 한 "스마트 폭격
경영"의 입안자는 데이비드 코티 가전부문 사장.

올해 44세인 코티는 그가 거둔 성공으로 인해 미국내 기업분석가들사이에
잭 웰치(61) 현 GE회장의 뒤를 이을 "차세대 총수"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 코티 사장이 강조하는 말은 "가전산업은 투자한 만큼 이익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투자를 할 때는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보면 GE가 거두고 있는 성공의 비결은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최소 투자.최대 결실"이라는 슬로건만 해도 그렇다.

문제는 "상식"을 어떻게 "실행"으로 옮기느냐 하는 점이다.

GE는 스마트 폭격이라는 군사전략에서 그 실행의 답을 찾아낸 셈이다.

< 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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