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시내 긴자의 호화판 술집.

총회꾼과 대기업의 총무부 관계자가 회사의 구린내나는 얘기들을 거침없이
주고 받는다.

깡패조직에서 "형님"이란 의미로 쓰는 "아니키"로 서로를 부른다.

"이번 주총에서는 아니키만 믿습니다".

총무부 관계자는 총회꾼에게 잘 봐달라고 거듭 당부한다.

총회꾼과 총무부.

일본재계를 휘청거리게 만든 금융부패는 바로 이 "총-총" 라인에서 시작
된다.

총무부는 총회꾼이 주총에서 경영에 영향을 주는 비리를 폭로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총회꾼에게 돈을 건낸다.

검은 커낵션을 활용, 회사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곳이 총무부이다.

일본에서 총무부장하면 으례히 실세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우치-시부야라인"은 은행에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총무부장.

기우치 다케히코씨(64)는 63년부터 10월부터 88년6월까지 다이이치칸교은행
의 총무부장을 맡았다.

그는 총회꾼들과의 교섭방법 정보수집등을 통해 총무부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불법거래 파문의 장본인인 고이케 류이치 총회꾼그룹 대표가 다이이치의
주식을 매입,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기우치씨가 총무부장으로
있을 때였다.

그는 88년 상무로 영전하면서 후계자로 시부야 타쓰오(52)씨를 차장으로
데려 왔다.

시부야차장은 일선에서 총회꾼교섭을 도맡았다.

잠시 노른자인 신바시지점장으로 나가 있다가 95년초 총무부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듬해에는 또다시 임원으로 승진했다.

총회꾼들과의 유착관계를 활용,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92년 10월부터 시작된 다이이치칸교의 거액불법융자는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총무부에 의해 저질러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이케대표에 대한 융자는 불가능했다.

다이이치칸교는 91년2월 이후 일반적인 추가융자시 결재금액이 10억엔에서
50억엔까지인 경우 심사담당임원의 결재를 거치도록 했다.

많은 부실채권을 갖고 있는 고객의 경우에는 결재범위를 5천만엔이하로
규제했다.

따라서 융자잔고가 88억엔에 이르고 있고 이자지불도 중단된 상태인
고이케 대표에게 다이이치칸교로서는 추가융자를 해줄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직접 융자를 해주지 않고 계열사인 다이와신용을 통해 우회융자
형태로 고이케 대표의 동생인 요시노리가 경영하는 고진빌딩 명의 구좌에
거액의 이익을 부정 제공한 것이다.

다이이치는 다이와측에 구두로 채무보증을 약속했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형태로 94년 7월부터 96년9월까지 모두 1백17억8천2백만엔을
융자해 주고 만 것이다.

심사담당임원은 이러한 방안을 놓고 사전에 총무부 간부와 협의했다.

총무부로 부터 품의서를 제출받아 결재, 승인했다.

고이케대표에 대한 관리는 "총무부 안건"으로 특별 취급했다.

다이이치칸교는 한술 더떠 대장성의 검사를 회피하기 위한 은폐공작까지
펼쳤다.

대장성 창구인 기획부까지 끌어들였다.

기획부로부터 대장성의 검사정보를 받고 즉각 대책을 짰다.

90년 9월 신주쿠니시구치(서구)지점에서 야마나시현에 골프장을 건설을
추진중인 부동산회사 라이벡스에 25억엔을 급히 융자해 줬다.

이 돈으로 고진빌딩은 록본기지점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을 갚았다.

94년 9월에도 다이와신용을 통해 고진빌딩에 6억엔을 우회융자해 줬다.

이 돈은 연체이자를 갚는데 쓰였다.

이같은 은폐전략으로 대장성의 영향권을 교묘히 빠져 나간 것이다.

금융부패의 구조는 총회꾼과 기업조직이 얽히고 힌 조직적 비리였던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