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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시대는 끝났는가"

요즘 유럽 경제학계는 이같은 화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인플레이션의 죽음"이란 이름의 한 경제서적
출간.

이 책의 저자는 홍콩상하이은행의 로저 부틀 수석경제연구원으로 유럽
금융가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멀리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플레이션을 당연한 경제현상
으로 받아들인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라고 지적한다.

다시말해 2차세계대전이전에는 인플레이션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2차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10년정도의 주기
에서는 지수의 큰 등락을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지수가 몇해동안 오르면 그 오름폭만큼 몇해동안 떨어지는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이후에는 이런 패턴이 무너져 어느덧 모든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게 로저 부틀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최근 2-3년동안 선진7개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2.2%선에 머물고
있는 것을 "2차세계대전이전과 같이 인플레이션 없는 시대로 돌아갈 징후"
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를 근거로 삼고 있다.

구조변화는 크게 성력화기술의 발달과 노동운동의 약화, 또 제품시장의
경쟁격화 등 3가지로 나눠진다.

이같은 변화 때문에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요구의 목소리를 낮춰야 하고
기업들도 제품가격을 마음놓고 인상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인플레인션 압력도 줄어든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부틀 연구원의 논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결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정통통화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부틀 연구원의 주장은 어불성설
이다.

통화량과 물가와의 상관관계를 전혀 무시했기 때문이다.

부틀 연구원도 통화량팽창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선 정부가 물가
목표치와 성장목표치를 정해놓고 적절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점을 인정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다.

국가간 교역이 자유로와져 기업들이 제품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는
주장에도 논리적인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후진국의 값싼제품을 수입하는 것은 물가억제를 위한
것일 뿐 인플레이션구조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교역량의 분명이 늘어났으나 선진국시장에서 후진국
제품의 점유율을 보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던 80년대후반이 가장
높았다.

설사 특정제품의 가격이 저가수입품의 범람으로 크게 떨어지다도 통화량이
고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다른 제품의 상승압력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서비스와 노동력의 국가간장벽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해소
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차세계대전이전과 지금은 경제환경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인플레이션의
죽음"을 속단할 수 없는 이유중 하나다.

2차세계대전이전에는 금본위제였기 때문에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데 한계
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또 임금이오르지 않더라도 이를 보전하는 다양한 복지정책이 나와 전체적
으로 근로자들의 실질소득과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부틀 연구원의 "인플레이션의 죽음"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들의 인플레기대심리를 잠재우는데는 유효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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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rder, he wrote, April 13, 1996
The Economist, London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