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실이 지난 28일 강원 원주 성문안CC에서 열린 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두 팔을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KLPGA 제공
방신실이 지난 28일 강원 원주 성문안CC에서 열린 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두 팔을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KLPGA 제공
‘스타’ 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는 없다. 마이클 조던이 없었다면, 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치지 않았다면, 미국프로농구(NBA)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도 지금의 모습일 리 없다.

유독 한국에서만 여자골프가 남자골프보다 인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세리 박인비 전인지 김효주 고진영 등 세계 최고 선수들을 20년 넘게 배출한 ‘꿈의 무대’가 우리 옆에 있는데, 누가 남자골프를 보겠는가.

하지만 잘나가는 여자골프에도 ‘위기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대형 스타가 나오지 않아서다.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장타 여왕’ 윤이나가 ‘오구 플레이’로 3년 출전정지 처벌을 받고, 김효주 최혜진 안나린 김아림 등 톱랭커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빠지자 골프팬 사이에선 “요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응원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신실(19)은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큰 키(173㎝)에서 나오는 300야드 초장타에 정교한 쇼트 게임, 그리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까지. ‘별’이 될 조건을 두루 갖춘 그가 정규 투어에 뛰어든 지 5개 대회 만에 우승컵(E1 채리티 오픈)을 들어 올리자 스타에 목말랐던 골프팬들과 업계 모두 환호하고 있다.

보통의 골프팬에게 방신실은 ‘괴물 신인’이지만, 골프업계에선 오래전부터 그를 ‘될성부른 나무’로 꼽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국가대표를 지낸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선수를 발굴하는 눈이 밝은 KB금융그룹이 일찌감치 그를 낚아챈 이유이기도 하다.

방신실이 더 매력적인 건 ‘완성된 스타’가 아니라 미래가 더 기대되는 ‘루키’라는 데 있다. 방신실은 지난겨울 정규투어 진출을 위한 시드 순위전에서 40위로 조건부 시드를 받는 데 그쳤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으로 체중이 10㎏이나 빠진 탓이었다. 국가대표 동기인 김민별과 황유민이 정규투어에 입성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는 우승하고 나서야 “친구와 언니들이 다 정규투어에 올라갔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정규투어에 들어가자 방신실은 달라졌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KLPGA 챔피언십에서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 들어가 하루 종일 방송 화면에 잡혔다. 최종 순위는 공동 4위. 2주 뒤 열린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번 챔피언 조에 올랐다. 마지막 두 개 홀에서 실수해 우승은 놓쳤지만, 골프팬 사이에 방신실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번 대회에선 우리가 알던 방신실이 아니었다. 루키답지 않은 노련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방신실은 3일 내내 선두를 지키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 우선 코스에 대한 영리한 접근이 돋보였다. 1, 2라운드에서 평균 250야드를 날렸던 티샷을 최종라운드에서는 240야드로 떨어뜨렸다. 대부분 홀에서 드라이버 대신 우드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1, 2라운드 결과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최종라운드에서 단 한 차례만 페어웨이를 놓쳤다.

결정적인 순간엔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1타차 불안한 선두를 이어가던 방신실은 16번홀(파5) 티샷을 앞두고 드라이버를 잡았다. 티샷을 292야드 보낸 데 이어 우드로 공을 그린 오른쪽 프린지에 떨궜다. 그림 같은 칩샷으로 공을 1m 옆에 붙여 버디를 잡아내 2타 차로 달아났다. 이날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다.

방신실은 알고 보면 노력파다. 장타도 타고난 게 아니다. 그는 “지난해 같은 KB금융 소속 선수인 나타끄리타 웡타위랍(19·태국)이 나보다 50m 더 멀리 보내는 걸 보고 자극받아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겨울 스윙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데 온 힘을 쏟았고, 그의 스윙 스피드는 웬만한 남자 선수 수준인 시속 109마일이 됐다. 그 덕분에 드라이버 비거리도 작년보다 30야드 늘었다.

이번 우승으로 방신실은 올 시즌 풀시드를 따냈다. 다섯 대회 만에 상금 2억원을 넘겨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다. “상금으로 가족과 외식하고 싶다”는 열아홉 살 소녀의 머릿속엔 더 큰 꿈이 있다. 방신실은 “LPGA 투어에 가고 싶고, 세계 1위가 되는 것도 목표”라고 했다. 올해도 골프팬들이 KLPGA 투어를 지켜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