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전장(7556야드)과 추운 날씨는 안 그래도 절뚝거리는 ‘골프 황제’를 넘어뜨렸다. 샷은 엉망이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얼굴엔 고통스러움과 함께 실망감이 묻어났다. 결국 황제는 두손을 들었다.

미국프로골프(PGA)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CC(파70)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3라운드가 끝난 뒤 타이거 우즈(47·미국)가 기권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메이저 대회를 중도에 포기한 건 1995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우즈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한 US오픈에서 손목 부상으로 기권했었다.

이날 우즈는 버디 1개에 트리플보기 1개, 보기 7개로 9오버파 79타를 쳤다. PGA챔피언십에서 그가 세운 18홀 최악의 스코어다. 중간합계 12오버파로 커트 통과 선수 중 최하위인 76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번 대회 시작 전만 해도 우즈는 자신감이 넘쳤다. 대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틀림없이 우승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우즈는 “지난달 마스터스 토너먼트 이후 단 하루만 쉬고 연습했다”며 “중요한 건 몸 상태보다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우즈는 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으스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1년2개월이 흐른 지난달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투지를 보였다. 경사가 심한 오거스타GC를 4일 동안 완주했다는 점에서 “우즈가 곧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우즈의 몸 상태는 마음가짐으로 이겨낼 수 있는 정도로 가볍지 않았다.

1라운드 4오버파로 커트 탈락의 위기에 놓였던 그는 2라운드에서 1언더파로 성적을 끌어올려 커트 통과에 성공했다. 현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6), 전 1위 더스틴 존슨(38) 등이 줄줄이 탈락했다는 점에서 골프팬 사이에선 “역시 우즈”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는 우리가 아는 우즈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1라운드 346야드, 2라운드 335야드에서 이날 286야드로 뚝 떨어졌다. 페어웨이 안착률(2라운드 78.5%→3라운드 42.8%)과 그린 적중률(55.5%→33.3%), 퍼팅 수(1.6회→1.8회)도 나빠졌다. 이러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6번홀(파3)에선 티샷이 물에 빠지면서 ‘양파’(트리플보기)를 기록했다.

이날 황제가 힘을 못 쓴 데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한몫했다. 이날 털사의 아침 기온은 14도였다. 아침 일찍 경기를 시작한 탓에 우즈는 이너웨어에 조끼까지 입어야 했다.

통상 날이 추워지면 허리·다리 수술 부위의 통증이 심해진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즈는 수차례 허리·다리 수술을 받았다.

우즈가 옛 모습을 되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즈는 올 시즌 출전한 두 번의 대회에서 3, 4라운드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 지난달 마스터스 대회에선 1라운드 71타→2라운드 74타→3라운드 78타→4라운드 78타로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기량이 떨어졌다.

이날 우즈는 7번홀(파4)에서 쪼그려앉아 퍼팅라이를 읽은 뒤 퍼터를 지팡이 삼아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샷을 친 뒤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우즈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좋은 샷을 치지 못해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골프황제는 쓸쓸하게 퇴장했지만 동료 선수들은 그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우즈와 1, 2라운드를 함께한 로리 매킬로이(33·북아일랜드)는 “내가 우즈였다면 2라운드가 끝난 뒤 집에 갔을 것이다. 우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강하다. 진정한 프로다”고 말했다. 3라운드에서 우즈와 함께 경기를 치른 숀 노리스(40·남아프리카공화국)도 “우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줬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우즈는 오는 7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 ‘디 오픈’에 나선다. 다음달 열리는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출전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남은 4주 동안 몸을 만든 뒤 출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3라운드에서는 올 시즌 처음 1부 투어에 진출한 미토 페레이라(27·칠레)가 중간합계 9언더파로 단독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매트 피츠패트릭(27·잉글랜드)과 윌 잘라토리스(26·미국)가 6언더파 공동 2위로 추격 중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