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왼쪽)과 캐디를 맡은 아버지 박세수 씨.  KLPGA 제공
박현경(왼쪽)과 캐디를 맡은 아버지 박세수 씨. KLPGA 제공
지난 2일 열린 올 시즌 첫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메이저 대회인 크리스 F&C KL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13번홀(파4)이었다. 선두 김지영(25)을 1타 차로 추격하던 박현경(21)은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을 앞두고 고심했다. 7번 아이언이냐, 8번 아이언이냐….

핀까지 거리는 152야드, 초속 6m 안팎의 강풍이 부는 상황. 캐디를 맡은 아버지 박세수 씨(52)는 “8번 아이언으로 핀보다 20m 오른쪽을 겨냥하라”고 조언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박현경은 8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고, 공은 왼쪽으로 휘어지며 홀 옆 30㎝ 지점에 떨어졌다. 이글이 될 뻔한 이 샷으로 박현경은 김지영을 2타 차로 따돌리며 승기를 잡았다.

시즌 첫 ‘메이저 퀸’ 박현경의 뒤에는 ‘특급 캐디’가 있었다. 아버지 박씨다. 박현경은 대회가 끝난 뒤 “이번 우승의 90%는 아버지 덕”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선수 출신이다. 박현경이 2013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될 때까지 직접 골프를 가르쳤고, 프로 데뷔 이후부터는 백을 메고 필드를 함께 누볐다. 박현경에게 아버지는 캐디를 넘어 코치이자 감독, 스승인 셈이다. 골프계 관계자는 3일 “4라운드 13번홀에서와 같은 조언은 박씨가 실제 선수로 활동했고 박현경을 직접 가르쳐서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트러블 샷이 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적절한 조언으로 박현경이 침착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박현경 부녀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점도 골프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박씨는 3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딸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세대 문화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박현경 또한 어린 나이에 비해 성숙한 편이어서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경은 “오는 10월 전북 익산 상떼힐 익산CC에서 열리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후원사인 한국토지신탁이 주최하는 대회인 동시에 아버지 박씨가 헤드프로로 근무하며 당시 직원으로 일하던 어머니를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박현경 부녀가 써내려갈 골프 신화에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조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