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황제, 펄펄 나는 후계자.’

미국프로골프(PGA)투어가 흥미로운 구도로 새 판을 짜고 있다. 5년 만에 부활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새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후계자 그룹 간 ‘빅뱅’이 머지않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돌아온 황제든, 차세대 황제든 한 명만 살아남는 외나무다리 승부가 줄줄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이 구도의 맨 앞에 섰다.

심상찮은 상승세…예견된 우승

매킬로이는 1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 비치의 TPC 소그래스(파72·7189야드)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총상금 1250만달러)을 제패했다. 대회 첫날 5언더파로 예열을 시작한 그는 7언더파(2라운드), 2언더파(3라운드)로 불을 지피더니 마지막 날 2타를 추가로 덜어내 승부를 뒤집었다. 최종 합계 16언더파 272타 역전 우승이다. 그는 전날 1타 차 단독 선두였던 욘 람(스페인·11언더파 공동 12위)에게 1타 뒤진 공동 2위였다. 1970년생 ‘노장’ 짐 퓨릭(미국)이 단독 2위(15언더파)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매킬로이는 지난해 3월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 이후 1년 만에 PGA투어 15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역대 최고인 우승상금 225만달러(약 25억5000만원)도 그의 몫이 됐다. 매킬로이가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제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킬로이는 “올해의 모든 경험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그는 끊임없이 우승권을 맴돌며 ‘자신의 비상’을 어느 정도 예고해왔다. 올 시즌 출전한 7개 대회 가운데 ‘톱 10’이 올해 여섯 번, 이번 대회 우승을 포함해 다섯 번이 ‘톱 5’다. 매킬로이는 “우승을 많이 놓쳤지만 대회를 거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참고 기다리면 내 순서가 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매킬로이는 이번 우승으로 우즈(미국), 헨릭 스텐손(스웨덴)에 이어 세계 남자프로골프 ‘4대 메인 이벤트’를 모두 석권한 세 번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4대 이벤트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월드골프챔피언십(WGC), 페덱스컵, PGA투어 메이저대회다.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온다

매킬로이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PGA투어에 전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목표는 하나, ‘마스터스 토너먼트’다. 마스터스는 매킬로이가 꿰맞추고 싶어 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마지막 퍼즐이다. 그는 2011년 US오픈, 2014년 디오픈, 2012년과 2014년 PGA챔피언십 등 총 4개의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마스터스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지금까지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바비 존스(1930년), 진 사라센(1935년), 벤 호건(1953년), 게리 플레이어(1965년), 잭 니클라우스(1966년), 우즈(2000년) 등 6명이 전부다. 이번 우승으로 일곱 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으로 가는 마스터스 리허설을 성공적으로 끝낸 셈이다.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 더스틴 존슨(이상 미국),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등 우즈의 뒤를 이을 후계자 경쟁에서도 일단 선두 자리를 꿰찼다. 매킬로이는 이번 대회로 페덱스컵 랭킹 1위에 올라섰다.

3주 앞으로 다가온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둘러싼 경쟁구도 역시 한층 흥미를 더하게 됐다.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15승째를 노리고 있는 우즈의 샷도 식지 않고 있어서다. 이날 3타를 추가로 덜어낸 우즈는 최종합계 6언더파 공동 30위로 대회를 마쳤다. 연못에 두 번이나 공을 빠트려 쿼드러플 보기를 범한 대회 2라운드 17번홀(파3)이 아쉬운 대목이다.

주목할 것은 불안정했던 우즈의 샷이 정교해졌다는 점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티샷 부문 공동 5위에 올랐다. 41위인 퍼팅지수를 끌어올리는 게 과제로 남는다.

우즈는 “17번홀이 흐름을 끊어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이버 샷을 좌우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날렸다는 게 가장 만족스러웠다”며 “퍼팅만 몇 개 더 따라준다면 마스터스를 기대할 만하다”고 내다봤다.

매킬로이도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TPC소그래스 코스가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와 비슷하다. 지금 인생 최고의 골프를 치고 있고 이것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선수 중엔 안병훈(28)이 7언더파 공동 26위로 순위가 가장 높았다. 강성훈(32)이 3언더파 공동 47위, 2017년 이 대회 챔피언 김시우(24)가 2언더파 공동 56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