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못했지만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스포츠 대회에선 종종 우승자만큼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1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총상금 1250만달러) 2위 짐 퓨릭(미국·49·사진)이 그런 ‘신(scene) 스틸러’의 또 다른 사례가 됐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마지막 한 방만 없었더라면 올해 새로 만든 금장 트로피가 그의 수중에 들어올 뻔했다. 퓨릭은 15언더파를 쳐 챔피언 매킬로이(16언더파)에게 한 타 뒤진 단독 2위로 135만달러(약 15억3000만원)를 챙겼다.

그는 흔히 말하는 ‘짤순이’다. 비거리 평균이 271.9야드(212위)에 불과하다. 1992년 프로 데뷔해 올해가 26번째 PGA투어 시즌이고, 올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598번째 대회 출전이지만 그의 평균 비거리는 300야드는커녕 290야드도 넘긴 적이 없다. 그러고도 통산 17승을 올렸다.

그는 2015년 RBC챔피언십을 끝으로 4년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2016년 ‘꿈의 58타’라는 대기록을 PGA투어 최초로 써내고도 성적은 5위(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 그쳤다. 지금까지 최고 성적이 2위(2016 US오픈). 갈수록 ‘장타 경연장’으로 변모해가는 투어의 흐름으로 볼 때 체력과 비거리가 한계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비거리를 늘리지 않았다. 전매특허인 ‘8자 스윙’도 바꾸지 않았다. 대신 특기인 정확성에 더 투자했다. 올 시즌 그의 비거리는 자신의 투어 생활 가운데 역대 최단 거리로 떨어졌다. 하지만 드라이버 정확도는 처음 1위로 올라섰다. 투어 내내 10위권 밖을 나간 적이 별로 없는 아이언 정확도도 12위로 준수하다. 얼마 전엔 과감한 변신도 꾀했다. 최근 몇 년 새 정확도가 떨어진 퍼팅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절친인 웹 심슨(미국)에게 부탁해 집게 그립과 팔뚝 그립을 모두 배웠다. 80위권을 맴돌던 퍼팅은 이번 대회에서 15위로 고개를 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이다. 그는 앞서 열린 혼다클래식을 계기로 꼽았다. 톱랭커들이 대다수 출전했고, 코스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 대회에서 퓨릭은 공동 9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의 드라이버 정확도는 1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대회에서도 내 스타일인 공격적인 샷을 끝까지 구사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PGA투어는 “매킬로이보다 이글거리진 않았지만 퓨릭은 그의 방식대로 밝게 빛났다”고 평가했다. 퓨릭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