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교란 '커닝 공시' 차단 …퇴직연금 금리 출혈경쟁 막힌다
금융위원회가 약 340조원 규모 퇴직연금 시장 교란 요인으로 지적됐던 '커닝 공시' 규제에 나선다. 커닝 공시는 운용상품 공시 의무가 덜한 퇴직연금 비사업자가 경쟁사의 금리를 참고해 더 높은 금리로 고객 유치 경쟁에 나서는 일을 뜻한다. 일부 금융사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운용 전략 대신 출혈 경쟁에 열 올리는 일을 막는다는 취지다.

1일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안을 오는 2일부터 다음달까지 30일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각계 의견을 청취한 뒤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의 의결을 거쳐 올 3분기 중 개정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만 적용되던 금리 공시 의무를 비사업자의 원리금 보장상품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비사업자도 원리금보장상품에 대해 다음달 적용할 금리를 이달 공시해야 한다. 늦어도 매월 1일로부터 3영업일 이전까지는 알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사업자·비사업자 간 과도한 금리 경쟁을 차단해 급격한 ‘머니 무브’(대규모 자산 이동)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간 퇴직연금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중소형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퇴직연금 가입자를 유치하려 애썼다. 매달 금리 공시 의무가 없다보니 타사 금리를 보고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식이다. 작년 말 일부 증권사의 유동성 확보가 시급해지자 과도한 금리 경쟁이 나왔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이들 비사업자는 주로 증권사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고금리 금융상품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통해 퇴직연금 이자수익을 제공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만약 해당 증권사가 파산하거나 부도가 날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계상 적립금의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는 퇴직연금을 두고 가입자들이 1% 안팎 추가 수익을 위해 운용 안정성을 해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수수료를 활용한 변칙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 제공도 금지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일부 퇴직연금사업자는 수수료를 보조금처럼 활용해 고금리 예금 상품 등을 만들어 이를 일부 대기업 DB형 퇴직연금에만 독점적으로 제공해 왔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까닭이다.

이같은 상품은 대기업 근로자에게도 실상은 이득이 전혀 없었다. DB형은 퇴직급여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되는 구조라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방식을 통하면 고금리 상품 가입에 따른 수익률 개선 효과가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에 돌아간다"며 "퇴직연금 가입자의 이익과도 무관한 만큼 해당 영업 관행 개선을 유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편법적인 사모 ELB 발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간 일부 증권사들은 실질적으로는 원리금 보장상품이지만 감독규정상으로는 그렇게 분류되지 않는 변칙 ELB 상품을 운영해왔다. 원금과 수익 보장, 중도 해지시 원금 손실 방지, ELS와 계정 분리, 공모로 발행 등 각종 규제를 우회할 수 있어서다. 금융위는 사실상 원리금보장상품에 해당하는 원금보장형 ELB에 대해 원리금보장상품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할 예정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