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기술 통제 전략의 핵심 중 하나인 설계 소프트웨어(EDA)를 독자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첨단기술 견제에 맞설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26일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 토종 소프트웨어(SW) 기업들과 협업해 14㎚(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이상 반도체를 설계할 때 쓰는 EDA 개발에 성공했다. 화웨이는 올해 이 EDA를 화웨이가 기존에 생산, 활용하고 있는 반도체에 적용할 계획이다.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전자디자인자동화)는 반도체 구조와 해당 반도체 공정의 설계, 성능 검증까지 할 수 있는 핵심 SW다. 미국 케이던스와 시냅시스, 독일 지멘스가 세계 시장을 75% 과점하고 있다. 지멘스의 EDA 사업부도 미국 멘토그래픽스를 인수한 것이어서 사실상 미국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미국 3사의 점유율이 77%에 달하며, 중국 토종 1위인 화다주톈은 5.9%에 불과하다.

미국은 지난해 8월 3㎚급 이상 고성능 반도체에 쓰이는 EDA를 중국 등에 수출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통제를 도입했다. 또 화웨이와 70여개 계열사를 2019년 5월 수출통제 명단(일명 블랙리스트)에 올려 해당 기업과 거래하려면 상무부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화웨이는 핵심 반도체 설계를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에서, 생산은 수탁생산(파운드리) 전문 업체인 대만 TSMC에 맡겨 왔으나 미국의 통제로 손발이 묶였다. 하이실리콘은 7㎚급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갖췄으나 미국 EDA를 쓰지 못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핵심 반도체 생산도 막혀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도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화웨이의 EDA 국산화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견제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화웨이는 미국 제재 이후 78종의 핵심 기술을 선정해 독자 개발에 나섰다. 이후 토종 기업들과 협업해 EDA 등 11종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년간 자사 제품의 부품 1만3000여개를 국산으로 교체하고, 회로기판 4000여종을 재설계했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기술자립'을 내건 이후 EDA는 반도체 부문에서도 특히 뭉칫돈이 몰리는 영역으로 부상했다. 상하이유니비스타라는 EDA 스타트업은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6월 11억위안(약 2081억원)을 유치했다. 난징 기반 스타트업 X에픽도 수억위안 투자를 받아냈다. 지난해 6월에는 베이징 엠피리언이 선전증시의 '중국판 나스닥' 촹예반 상장 승인을 받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EDA 시장은 2020년 81억달러에서 2024년 136억달러로 연평균 13.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