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마켓PRO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프리미엄 투자 콘텐츠를 보다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류은혁의 공시 읽어주는 기자

자사주 활용한 주주친화정책…효과는 '글쎄'
직접 자사주 매입 효과적, 여기에 소각까지 이어져야
[마켓PRO] 씨젠, 주가 방어에 또 500억 썼지만…주가 주춤한 이유?
👀주목할 만한 공시

씨젠이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안정을 위해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주가부양 놓고 고심에 빠진 씨젠

코로나19 팬데믹 특수를 누렸던 진단키트 업체인 씨젠이 주가부양을 놓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사주를 활용한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씨젠은 작년 3월(500억원 자사주 취득 신탁)에 이어 지난달 28일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1년간 1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주가 부양에 힘쓰고 있는 것.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은 일반적으로 주가를 서둘러 부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려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 한국거래소에 신고서를 제출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신탁계약을 맺으면 이런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자사주 신탁계약 카드 꺼냈지만…효과 없어

최근 주가가 급락하자 씨젠이 분위기 반전 카드로 자사주 신탁계약을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씨젠 주가는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5만5000원선을 넘어섰지만 올 초에는 장중 2만3850원까지 떨어지는 등 현재 2만4000원대에 거래 중이다.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짐과 동시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다.

문제는 주가 부양 카드를 꺼냈음에도 주가가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8일 씨젠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겨우 0.65% 오르는 데 그쳤으며, 전날에는 1.43% 떨어졌다. 사실상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에 따른 주가 부양 효과는 없었던 것.

일각에선 자사주 신탁계약보단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주가 부양 효과가 크다고 지적한다. 직접 자사주 취득은 3개월 이내에 공시한 대로 목표 수량을 사들여야 한다. 이때 매수주문 수량을 비롯해 횟수, 가격 등이 정해져 있다.

반면 신탁계약을 통한 자사주 취득은 직접 자사주 취득과 달리 강제성이 없어 나중에 매입을 안 해도 문제가 안 된다. 더군다나 신탁계약은 매입한 자사주를 계약기간 내에 매도가 가능하기에 투자자들 입장에선 신뢰성이 높지 않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은 일반적으로 호재로 여겨져 일시적인 주가 상승효과를 불러오는데, 자사주 신탁 등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 효과를 누리기 위해선 자사주 매입 후 소각까지 이어지는 것이 좋다"면서 "또 자사주 신탁계약보단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시장에 더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친화정책보단 신성장동력 필요할 때

최근 씨젠이 열을 올리고 있는 분야는 분자진단 시장이다. 올해 다수의 특허 기술이 적용된 60여 종의 신드로믹 분자진단 제품과 완전 자동화 분자진단 시스템 AIOS를 기반으로 글로벌 분자진단 시장 공략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신드로믹 검사는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체를 한꺼번에 검사해 원인을 한 번에 찾아내는 검사를 말한다.

나아가 1분기 미국에서 연구용(RUO) 제품 현지 생산을 시작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씨젠은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호흡기 제품에 대한 허가 신청 건을 접수해 내년부터 연 3개 이상의 신규 제품을 개발해 미 FDA의 인증을 받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씨젠
사진=씨젠
일부 전문가들은 새로운 상승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모멘텀은 실적 회복이나 신사업 등을 의미한다. 실제로 씨젠의 지난해 매출액은 연결 기준으로 전년(1조3708억원) 대비 37.7% 감소한 8533억원, 영업이익은 6666억원에서 70.6% 급감한 1959억원으로 집계됐다. 엔데믹 국면에서 수요가 급감하며 실적이 대폭 감소한 것.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씨젠의 주가 추이를 보면 인위적인 주가 부양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주주들이 기대하는 것은 친화정책보단 실적 등 기업가치가 개선될 수 있는 모멘텀인데,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포스트 코로나에 맞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