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공모 회사채 시장에 몰린 매수 주문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우량 기업의 회사채 매입에 적극 나서면서 연초 채권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기업 12곳의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확보한 매수 주문은 총 20조635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12개 기업이 증권신고서를 통해 밝힌 회사채 발행 예정금액 2조1100억원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대부분 회사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기업들은 많게는 조달 규모를 두 배가량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수요예측을 진행한 GS에너지(AA급)는 1700억원 모집에 1조5600억원이 들어왔다. SK지오센트릭(AA-급)도 20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목표 물량의 다섯 배가 넘는 1조1200억원을 확보했다.

포스코(AA+급)는 지난 5일 3조9700억원의 주문을 받아 2012년 회사채 수요예측이 도입된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LG유플러스(AA급)도 3조2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지난해 하반기 회사채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잇따른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미매각 사태가 반복됐다.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둬 평판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발행 일정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 상황이 돌변했다. 우량채 매수세가 살아나면서 회사채 ‘완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금리가 조만간 고점을 찍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가운데 기관이 연말 닫았던 지갑을 여는 ‘연초 효과’가 겹친 영향으로 해석된다.

회사채 투자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크레디트 스프레드(신용등급 AA- 기준 3년 만기 회사채 금리-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안정세를 찾고 있다.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10일 1.33%포인트로, 작년 12월 초 1.70%포인트 수준보다 0.3%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단기자금 시장의 대표적 지표인 기업어음(CP) 금리도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연 4%대로 내려왔다.

다만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비우량채 시장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공모 회사채 시장에 도전한 기업들은 모두 AA급 이상 우량채다. 자금 조달난에 시달리는 A급 이하 기업들을 위한 맞춤 지원 정책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예상을 뛰어넘는 회사채 시장의 강세가 A급까지 파급될지가 관심을 끈다”며 “A급 회사채 시장을 지원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