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 12일 오후 5시3분

상장기업 전환사채(CB)에는 부자들만 아는 비밀이 있다. 양도차익으로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벌어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CB와 비슷한 성격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세법상 대주주에 해당하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코스닥 머니게임의 신흥 부자들이 ‘CB 공장’에 줄을 서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현재 상장 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 세법상 대주주들에게는 22~33%의 양도소득세를 매긴다. 세법상 대주주는 연말 결산일 기준 단일 주식을 1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거나 지분율이 일정 수준(유가증권시장 1%, 코스닥시장 2%)을 넘는 경우다. 정부는 지난 20여 년에 걸쳐 대주주 기준을 100억원→50억원→25억원→15억원→10억원으로 낮춰왔다. 2021년부터는 이를 3억원까지 낮추려 했지만 그나마 개인투자자의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CB 부자들은 예외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말에 CB를 1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어도 세법상 대주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컨대 상장사 CB를 100억원 이상 보유한 사람이 이듬해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전량 매각하더라도 양도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과세 당국의 방치 속에 큰손들은 ‘CB 공장’에서 돈잔치를 벌여왔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5조9355억원 규모의 CB가 주식으로 바뀌었다. 통상 주가가 전환 가격보다 30% 이상 높을 때 CB 전환이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8조원어치의 주식이 시장에 풀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CB 투자자들이 평균 50%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가정하면 4조원의 수익을 낸 셈이다. CB 투자가 아닌 일반적인 주식 거래였다면 8800억~1조320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2020년 주식 양도소득세 전체 세수(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경우 지분율 이상으로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하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도 법인을 세우거나 우호세력에 CB를 몰아주는 방식 등으로 교묘하게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BW 투자자는 세법상 대주주로 분류되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과세당국이 BW에 붙어 있는 신주인수권을 주식과 비슷하다고 보고 대주주 판단 기준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CB 발행량이 BW보다 유독 많은 이유도 세금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CB 발행액은 2015년 1조7941억원에서 지난해 9조5598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만큼 주식 시장에 전환 매물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득세법상 BW의 신주인수권은 지분증권과 비슷한 성격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CB는 이런 법적 근거가 없어 과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종문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CB와 BW는 본질이 같은 메자닌이어서 차별할 이유가 없는데도 입법이 미비해 과세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되면 CB 전환차익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되지만 정부 발표대로 금투세가 2년 유예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