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사진=연합뉴스
흥국생명이 유동성 리스크에 맞닥뜨린 가운데 직접적인 지분 관계가 없는 태광산업이 해결사로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행동주의를 펴는 자산운용사와 기관투자자들은 "일반주주들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다만 법조계는 관점의 차이이지 잘잘못을 따질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흥국생명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약 4000억원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다.

흥국생명은 조달시장 환경 악화 등을 이유로 2017년 발행한 5억달러(발행당시 약 5600억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터다. 당초 콜옵션 행사 기일은 지난달 9일이었다. 하지만 채권시장 투자심리를 크게 끌어내렸다는 지적이 나오자 엿새 만인 7일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흥국생명은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4000억원 규모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하고 남은 금액은 그룹 자금에서 수혈하면서 일단 급한 불을 껐다.

이번 태광산업이 지원을 고려 중인 4000억원대 자금은 은행들을 상대로 발행한 RP 상환에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의 증자 참여설이 돌자 즉각 기관투자자들은 반발했다. 대주주를 위해 소액주주의 희생을 강요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최대 주주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지분 56.3%)이다. 나머지 지분도 전부 이 전 회장의 친족이나 태광그룹 계열사가 보유 중이다. 기관들의 비판을 받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이 전 회장 개인이 흥국생명의 대주주이자 태광산업의 대주주일 뿐, 지분상으로 무관한 회사가 유증에 참여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9일 오후 공시를 통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공시 직후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입장문을 통해 "최근 흥국생명의 유동성 리스크에 따라 흥국생명의 증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는 흥국생명의 주주가 해결해야할 문제"라며 "유증 참여는 대주주가 독식하고 위기상황만 소수 주주와 공유하겠다는 발상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투자가와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긴급 논평을 내고 "이 전 회장이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어려운 선택지 대신, 태광산업에게 그 책임을 떠 넘기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지원에 나설 경우 태광산업의 기업가치와 일반주주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강희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자본 수혈이 필요해 지원해주는 취지가 크긴 하나 생보사에 투자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돌을 던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생보업 투자에 따른 효과와 향후 전망치를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재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전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는 "어려우니까 투자하지말자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며 "쟁점이 '지분 관계'여선 안 된다"고 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