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이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통한 벤처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회사들을 필두로 스타트업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대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회사는 물론 보쉬(공구), 보잉(항공),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정유) 등 전통 제조업 분야 글로벌 기업들도 CVC를 통해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18일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CVC를 통한 투자금액은 1693억달러(약 234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6년보다 네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전체 글로벌 벤처투자금액(6430억달러)의 26%를 차지한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658억달러(약 91조원)가 CVC 투자였다. CB인사이트는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CVC는 여전히 역대 최대 수준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CVC 중에선 구글(구글벤처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구글벤처스는 지난해 122건의 투자를 집행하며 글로벌 CVC 중 투자 건수 기준 1위를 차지했다. 구글은 우버, 에어비앤비, 슬랙, 블루보틀 등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떡잎부터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글벤처스 외에도 ‘캐피털G’라는 CVC를 보유하고 있다. 캐피털G는 후기 단계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한다.

이 밖에 마이크로소프트(M12), 인텔(인텔캐피털), 퀄컴(퀄컴벤처스) 등이 CVC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에선 PC 제조사 레노버 계열 CVC 레전드캐피털, 일본에선 미쓰비시UFJ 계열 CVC 미쓰비시UFJ캐피털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엔 블록체인 열풍을 타고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CVC 코인베이스벤처스의 약진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코인베이스벤처스는 올 2분기 28건의 투자를 집행했는데, 투자 건수 기준으로 구글벤처스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해외에선 CVC 설립과 관련한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 덕분에 기업들은 일찌감치 CVC를 통해 스타트업을 육성해왔다. VC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규제가 일부 완화돼 지주회사들의 CVC 설립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채 비율과 외부 출자자 비율 등 제약 조건이 있다”며 “더 많은 CVC가 등장해 스타트업 업계 마중물이 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