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인터뷰

신약개발 바이오주, ESMO 초록 발표된 대목에 ‘와르르’
“학회 발표 채택과 성공적 임상데이터,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
[마켓PRO] "유명 학회 전후 바이오주 랠리 공식 더 이상 안 통한다"
“2~3년 전만 해도 유명 학회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호재로 받아들여졌지만, 성과가 나오는 건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돼 투자자들도 학습을 하면서 스마트해졌습니다. 매도 시점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결국엔 주식 시장에서 이벤트로서의 힘을 잃게 될 겁니다.”

올해 유럽종양학회(ESMO) 연례학술대회 개막을 앞두고 초록이 공개된 지난 5일 바이오섹터가 급락한 데 대해 서울 강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A씨의 진단이다.

ESMO는 미국암학회(AACR),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와 함께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히며, 대형 학회의 학술대회에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성공적인 연구·개발(R&D) 결과를 발표하면 기술수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기대에 제약·바이오 종목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형 학회의 연례학술대회는 ‘대목’으로 인식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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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앞둔 랠리 짧아지고 조정 폭은 커져”

중견 바이오기업의 IR 담당 임원 B씨는 “과거엔 학회·컨퍼런스 이벤트를 앞두고 한달에서 2주 전부터 행사 개최 때까지 주가가 올랐다가, 폐막 이후 상승분의 일정 부분을 반납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학회 개막으로부터 상승이 시작되는 시점은 늦어졌고 반락하는 시점은 빨라진 데다, 주가도 기대감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3대 암학회 중 주식 시장에는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ASCO의 올해 연례 학술대회 때 KRX헬스케어업종지수는 개막 직전인 6월3일(한국시간)에 고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 하락세는 6월 중순까지 이어져 KRX헬스케어지수는 직전의 저점(5월19일의 2839.02)보다 아래인 2741.50(6월16일)까지 빠졌다. ASCO 연례 학술대회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여파로 2020~2021년에는 온라인 방식으로만 진행되다가, 올해는 6월3~8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3년만에 대면 방식으로 개최돼 기대를 모은 바 있다.

ASCO 때는 학술대회 개막 직전부터 하락세가 시작됐지만, 이번 ESMO는 개막을 나흘이나 앞둔 지난 5일 급락세가 나타났다. 이날 KRX헬스케어지수는 직전 거래일 대비 2.62%가, HLB는 4.87%가, 엔케이맥스는 12.01%가, 메드팩토는 7.10%가 각각 하락했다. 이중 이특날인 지난 6일 주가가 오른 곳은 메드팩토 뿐이다.

이벤트의 힘이 약해지는 와중에 다른 악재까지 겹친 영향으로 분석됐다. 우선 A씨는 명절을 앞둔 수급 요인을 지적했다. 그는 “올해 ESMO는 한국의 추석 연휴 기간에 열리는데, 보통 명절 연휴를 앞두고 주식 시장에서는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늦더라도 데이터 확인하려는 성향 강해져”

학술대회 개막을 앞두고 공개된 초록이 하락의 트리거가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B씨는 “지난 5일 공개된 초록에 HLB의 다른 발표에 대한 내용은 있었는데,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간암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실망 매물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HLB가 해당 임상 연구 결과의 내용이 오는 8일 공개될 예정이고 ESMO 학술대회에서도 예정대로 발표된다고 밝혔지만,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HLB는 이번 ESMO 연례학술대회에서 리보세라닙과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중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간암 1차 치료제로의 승인을 받기 위한 사전절차(Pre-NDA)를 신청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의 병용요법에 특히 관심이 모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만 B씨는 대형 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자리를 차지한 게 반드시 신약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학회 발표 대상 심사는 연구의 과학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과학적 가치와 우수한 임상 데이터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임상 데이터가 후보물질의 유효성·안전성을 입증할 만큼 좋지 않더라도 연구 결과가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으면 학술대회 발표로 채택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투자자들도 이 부분을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기대만 갖고 미리 바이오 종목을 사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확인한 뒤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는 성향이 강해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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