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기자동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자동차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들며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다. 상승세인 휘발유 가격에 부담을 느낀 미국인들이 전기차로 눈길을 돌리면서 기업들이 전기차 가격결정력을 갖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미국의 전기차 평균 판매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오른 대당 5만4000달러(약 6900만원)로 집계됐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내연기관차 가격의 상승률(14%)을 웃돈다. 지난달 미국에서 내연기관차 평균 가격은 4만4400달러였다.

미국 자동차기업들이 전기차 가격을 인상한 결과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사의 전기 픽업트럭인 GMC 허머 가격을 대당 6250달러(약 800만원)씩 최근 올렸다. GMC 허머의 기존 가격은 대당 8만5000~10만5000달러였다. 테슬라는 자사의 전기차 모델Y SUV(스포츠유틸리티차) 가격을 올해에만 3차례 올렸다. 그 결과 현재 미국에서의 모델Y SUV 가격은 올 들어 9% 오른 6만9900달러가 됐다. 포드, 리비안, 루시드 등도 최근 몇달 사이 자사의 전기차 가격을 올렸다.

자동차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용 부담이 늘었기 때문에 전기차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에 비해 두 배씩 뛰었다. 휘발유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물류비용도 늘었다.

전기차가 최근 인기를 누리면서 기업들이 가격 상승에 부담을 덜 느끼게 된 점도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달러를 최근 넘기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전기차 구매를 적극 고려하게 됐다. GM의 GMC 허머 신차를 인도받으려면 2년을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GM과 테슬라를 제외한 기업의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세제 혜택도 있어 실질 부담액도 줄어든다.

그러나 자동차기업들이 계속 ‘배짱 장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직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남짓이어서다. 소비자 층을 넓히기 위해서는 결국 자동차기업들이 전기차 가격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댄 레비 크레디트스위스 분석가는 “원자재 가격 부담이 줄어든다면 기업들은 ‘얼리 어답터’ 외의 소비자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