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판도 변화 속에서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이 지고 ‘신(新) FAANG’이 뜨고 있다. 새로운 FAANG은 에너지(Fuels), 항공·방위(Aerospace), 농업(Agriculture),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Nuclear), 금·광물(Gold) 5개 업종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 2월 말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며 미국 빅테크의 대체 투자 분야로 이 5개 업종을 꼽았다. 그리고 ‘FAANG 2.0’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가 오르는 FAANG 2.0

풀죽은 원조 FAANG…이젠 '新 FAANG' 시대
BoA의 예상대로 지난 4개월 동안 세계 주식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자금의 움직임은 급변했다. 미국 빅테크를 빠져나온 투자금이 지금까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에너지와 농업 관련주 등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월 23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6월 9일까지 ‘FAANG 2.0’을 구성하는 5개 업종의 주요 상장지수펀드(ETF) 가격은 시장 평균보다 17% 더 올랐다. 에너지 관련 ETF 가격은 4개월여 만에 40% 급등했다. 원자력과 금 ETF 가격도 1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원조 FAANG의 주가는 12% 하락했다. 가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넷플릭스의 주가는 반토막 났다.

개별 종목 기준으로도 차세대 FAANG 관련주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졌다. 천연가스 생산량 1위 미국 상장사 EQT코퍼레이션의 주가는 220% 급등했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급속히 줄이려는 유럽에 대한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덕분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방위비를 상당폭 증액하겠다”고 밝힌 영향으로 미쓰비시중공업 주가는 70% 뛰었다. 캐나다 비료 업체인 뉴트리엔의 주가는 20% 올랐다.

블록 경제권 시대 수혜주

FAANG 2.0 관련 상장 기업의 수익 전망도 밝다. 정유, 항공·방위, 농산물, 귀금속 등 4개 업종 상장사들의 주당 평균이익은 2024년까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약 15달러였던 농산물 관련 기업의 주당 평균이익은 2024년 40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세계은행은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가격을 종합한 에너지 가격지수의 2024년 전망치를 110.8로 상향 조정했다.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세계은행은 이 지수 전망치를 84.4로 예상했다.

115.9였던 2024년 식료품 가격지수 예상치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33.5로 끌어올렸다. 영국의 군사정보 분석 전문기관 제인스는 2025년 세계 방위비 예상치를 2조1500억달러(약 2759조5250억원)에서 2조220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투자자금이 FAANG에서 FAANG 2.0으로 움직이는 것은 세계화 흐름이 쇠퇴하고, 블록(분단) 경제권 시대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자금과 재화, 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들며 효율적으로 유통되는 세계화의 수혜를 누렸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이 시작되자 세계화는 위기에 처했다.

기치카와 마사유키 미쓰이스미토모DA애셋매니지먼트 수석 거시경제 전략가는 “적어도 10년은 냉전 시대와 같은 비효율적인 경제 환경을 의식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