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현금비중 9·11 이후 최대…"아직 완전한 항복 아니다"
월가 펀드매니저들의 현금 비중이 2001년 9·11 사태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술주 공매도는 2006년 8월 이후 가장 많아졌고, 주식에 대한 '비중 축소' 시각은 2020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7일(미 동부 시간) 이같은 내용의 5월 글로벌 펀드매니저 서베이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은 월가에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는 조사로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을 운용하는 매니저 200여명이 참여한다. 5월 조사에 답한 투자자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8720억 달러에 달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먼저 펀드매니저들의 현금비중이 지난달 5.5%에서 이달 6.1%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많은 현금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월가 현금비중 9·11 이후 최대…"아직 완전한 항복 아니다"
또 주식 비중을 확대한다는 투자자는 2020년 5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중 확대하고 있다는 답변과 축소하고 있다는 답변의 차이를 보면 지난달 비중 확대 응답이 6% 더 높았는데, 이번달 비중 축소한다는 답변이 13% 더 높아진 것이다. 비중 확대하는 업종도 유틸리티, 필수소비재, 헬스케어 등 경기방어 업종 중심이었다. 기술주는 2006년 8월 이후 가장 큰 공매도 대상으로 꼽혔다. 투자자들은 유럽과 신흥시장 주식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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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가장 큰 위험으로 매파적 중앙은행(31%)을 가장 많이 꼽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27%)와 인플플레이션(18%),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10%)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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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의 68%는 인플레이션이 다음 분기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 사람보다 34% 더 많았다.

투자자들은 미 중앙은행(Fed)이 이번 긴축 주기에 25bp를 기준으로 7.9회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200bp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지난달 7.4회 예상했던 것보다 증가한 것이다.

이들은 '가장 붐비는 거래'로 원유·원자재 매수(28%)를 꼽았다. 미 국채 매도(25%), 기술주 매수(14%) 등이 뒤를 이었다. 기술주 매수는 작년까지 수년간 항상 가장 붐비는 거래로 꼽혀왔는데, 답변이 대폭 감소했다.

펀드매니저들은 또 S&P500 지수가 평균 3529까지 떨어져야 연준의 시장 지원, 즉 Fed 풋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보다 12% 더 떨어져야한다는 얘기다.
월가 현금비중 9·11 이후 최대…"아직 완전한 항복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넷 수석 전략가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가장 높은 현금 수준, 2006년 8월 이후 가장 많은 기술주 공매도, 2020년 5월 이후 가장 큰 주식 비중축소를 보면 투자 심리가 매우 부정적이지만,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금리 인하보다는 금리 인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항복' 상태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주식이 임박한 약세장 랠리에 가깝다고 보지만 궁극적 바닥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