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자동차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타고난 ‘자동차 사나이(car guy)’로 통한다. 30년 이상 자동차산업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그는 취미 생활로도 카레이싱을 즐기는 등 차를 늘 가까이하고 있다.

포드가 위기에 처했던 2020년 CEO로 발탁된 팔리는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포드의 영광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전기차 관련 계획을 공개하면 포드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를 이기는 것이다. 포드가 아니더라도 내연기관차 중심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자동차 기업이라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레이싱 즐기는 '덕업일치' 자동차맨, 길 잃은 포드, 전기차로 구하다

‘포드맨’ 할아버지 영향받아

팔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포드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팔리의 외할아버지는 1914년 포드의 디트로이트 공장의 389번째 직원으로 입사했다. 당시는 포드의 T형 자동차가 미국에서 빠르게 판매량을 확대하던 시절이었다. 팔리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큰 관심을 보였고 10대 시절에는 1966년식 포드 머스탱을 보유하기도 했다. 그는 미 조지타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졸업 후에는 IBM에서 근무했다.

팔리는 1990년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하며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판매, 마케팅 및 소비자 관리 업무 등을 하며 역량을 인정받아 고위 임원에 올랐다. 무엇보다 마케팅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팔리는 2007년 할아버지의 직장인 포드에 합류했다. 2010년에는 글로벌 마케팅, 영업, 서비스를 총괄하는 부사장에 올랐다.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포드의 차세대 CEO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됐다.

그가 나서면 포드 주가가 뛴다

2020년 포드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여파로 1분기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사실 코로나19만이 근본적 원인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포드는 정체성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포드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중심으로 회사를 재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팔리의 전임인 짐 해킷이 CEO로 재직했던 2017년 5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포드 주가는 40% 가까이 떨어졌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포드는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종목 중 하나로 꼽혔다. 반면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세계 자동차산업과 미국 증시를 뒤흔들고 있었다.

결국 포드는 CEO 교체를 결정하고 2020년 8월 팔리를 신임 사령탑으로 발탁했다. 그해 10월 1일 CEO에 오른 팔리는 마주치는 직원들을 붙들고 “지금 포드에 필요한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도요타에서 그가 배운 겐치겐부츠(現地現物·현장을 반드시 확인) 원칙을 활용했다.

팔리는 집에 TV를 두지 않을 만큼 독서광에 일 중독자인 CEO로 통했다.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카레이싱에 임하는 자세처럼 공격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직원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리더일 수 있지만, 포드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데는 필요한 자질이기도 했다. 팔리는 월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명회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트위터 등을 통해 투자자 및 주주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기도 했다.

그의 노력은 포드 주가 상승으로 반영됐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뉴욕증시에서 포드의 시가총액이 5년여 만에 제너럴모터스(GM)를 추월했다. 지난해 연간 포드의 주가 상승률은 136%로 미국 S&P500 기업 중에서도 최상위 성적을 냈다. 지난 1월에는 포드 역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000억달러를 넘겼다. 이렇게 시장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 이유는 포드의 전기차 전략이었다.

전기차 산업의 왕좌 가능할까

팔리는 지난해 2월 “2025년까지 전기차, 자율주행차에 290억달러(약 35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드의 전기차 전략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경쟁사인 GM 등에 비해 전기차로의 본격 전환 결정이 늦게 나온 데다 투자액 등을 볼 때 소극적인 거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포드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동시에 성과를 내면서 시장의 인식이 달라졌다. 그해 포드는 SK이노베이션과 함께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포드의 전기차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은 사전 예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2일 팔리는 전기차에 더 힘을 싣기 위한 분사 계획을 발표해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포드의 전기차 부문(포드모델e)과 내연기관차 부문(포드블루)을 나누는 것이다. 팔리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업에는 각각 다른 기술과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드는 2026년까지 전기차 사업에 500억달러(약 60조원)를 투자해 그해까지 연 200만 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포드가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 대수는 2만7000여 대다. 영업이익률 전망치도 기존 8%에서 10%로 올렸다.

픽업트럭으로 대표되는 포드의 내연기관차 부문은 현금을 창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포드는 F시리즈 픽업트럭만으로도 연 42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맥도날드,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을 능가하는 액수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포드 주가는 전날보다 8.38% 상승 마감했다.

그러나 포드가 전기차 시장에서 얼마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쟁이 뜨겁기 때문이다. 세계 전기차 산업을 대표하는 테슬라뿐만 아니라 GM,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전기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내놨다. 팔리는 “전통의 자동차 기업뿐 아니라 신생 기업까지 모두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