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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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증시에서 소외됐던 바이오 섹터가 최근 돌발 호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신약 개발이라는 ‘꿈’을 자극하는 이벤트가 주목받았지만, 신약 연구·개발(R&D)이 실제 기업의 수익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었다. 이에 작년부터는 신약 관련 이벤트가 증시에서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이번엔 다른 모습이다.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의 기술수출에 힘입어 깜짝 실적을 내놨다. 미국에서의 판매량도 성장하고 있다.

또 미국이 중국의 우시바이오를 제재 대상에 올린 건 중장기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평가된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일까지 코스피 의약품 업종 지수는 5.02% 올랐다. 이 지수가 고점을 찍은 2020년 12월7일(2만2448.17)과 비교하면 전일 종가(1만4550.10)은 35.18% 낮은 수준이다. 작년 내내 제약·바이오 섹터가 호재엔 둔감하게, 악재엔 민감하게 반응해온 결과다.

하지만 지난 8일 전해진 두 가지 호재성 소식과 이에 반응하는 주가 흐름은 지난 1년여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중 갈등에 삼바 중장기 반사이익 기대↑

우선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의 불똥이 중국 최대 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바이오에 튀면서 경쟁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우시바이오를 수출입 미검증 목록에 추가했다. 수출입 미검증 목록은 미 당국이 통상적인 검사를 할 수 없어 최종 소비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엄격한 수출 통제를 받게 되는 대상을 말한다. 미 당국은 우시바이오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바이오리엑터와 바이오필터의 최종 소비자를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소식이 한국증시에 반영된 지난 8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85% 올랐다. 장중에는 상승폭이 10.09%까지 커지기도 했다. 이튿날인 9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38% 하락했다. 미국의 수출입 미검증 목록에 올랐다고 해도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우시바이오는 위탁개발(CDO)와 위탁연구(CRO)에 집중돼 있고, 중·소규모 배치 위주로 사업을 영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생산(CMO)에 사업이 집중돼 있고 대규모 위주이기에 직접 경쟁 대상은 아니다”라며 “게다가 연간 생산 일정이 정해져 있고, 올해 1·2·3공장이 풀가동 예정으로 우시바이오에 대한 제재 영향으로 반사 수혜가 단기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우시바이오의 중장기적 경쟁력에 훼손이 가해진 데 따른 수혜는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바이오의약품 공장에 들어갈 바이오리엑터와 바이오필터를 원활하게 조달하지 못하면 우시바이오가 계획하고 있는 설비 증설에 차질이 생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 환경이 개선될 수 있어서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번 수출입 미검증 목록 등록에서 더 나아가 미국 상무부의 추가적인 제재도 조심스럽긴 하나 가능하다”며 “급성장 중인 중국 바이오테크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 의도가 분명하고 일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 자체 개발 신약 덕에 ‘깜짝 실적’

SK바이오팜의 호실적도 제약·바이오 섹터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 회사는 작년 4분기 매출 2307억원, 영업이익 1334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컨센서스인 매출 414억원, 영업손실 33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중국과 캐나다로의 기술수출에 따른 일회성 수익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SK바이오팜은 작년 11월 중국 투자사 ‘6디멘션 캐피탈’과 함께 현지에 ‘이그니스테라퓨틱스’를 설립하했다. 그러면서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판매명 엑스코프리)를 비롯한 중추신경(CNS)계 질환 치료제 6종을 현물출자하고, 신설회사의 주식 1억5000만주와 2000만달러(약 240억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작년 12월에는 캐나다 엔도그룹에 현지에서의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개발·상업화 권리를 넘기고 역시 2000만달러의 계약금을 받았다. 향후 개발 단계 진전에 따른 마일스톤(기술료)와 상업화 이후 로열티도 받게 된다.

기술수출에 따른 일회성 수익의 큰 금액에 가려졌지만, 자체 판매 실적도 고무적이다. 작년 연간 기준으로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은 작년 초 제시한 목표 600억~800억원의 상단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여기에 유럽으로의 원료의약품 매출을 더하면 전체 제품 매출은 892억원에 달한다. 1년 전에 비해 589% 증가한 성적이다.

허혜민 연구원은 “대규모 마일스톤 유입이 없는 내년에는 적자 전환이 예상되지만, 기타 국가로의 기술이전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며 “제품 매출의 질은 세노바메이트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레이저티닙, 첫 번째 한국산 글로벌 대형 신약될까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역량이 한 단계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신약 개발의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거나, 다국적 제약사로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수출한 뒤 계약 해지를 통보받던 데서 상업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오테크 기업의 성장은 상업화 약품이 글로벌 대형 품목으로 등극하면서부터 본격화된다”며 “안정적인 로열티 매출은 다시 R&D 투자로 이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아이탬이 개발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업화 이후 대형 품목으로 성장하는 첫 번째 사례로는 유한양행이 얀센에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국내 판매명 렉라자)이 기대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레이저티닙은 비소세포폐암 시장의 글로벌 블록버스터인 타그리소(오시머티닙) 시장으로의 침투가 기대된다”며 “아미반타맙과의 병용으로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타그리소에 내성이 생긴 환자, 백금화학 기반 요법에 내성이 생긴 환자 등에서 긍정적인 데이터를 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급 측면에서도 제약·바이오 섹터에 관심을 가질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허혜민 연구원은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소외됐다보니, 이제는 수급에 따른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종목별로 긍정적인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