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넷투자파트너스가 크래프톤에 99억원을 투자한 것은 2009년이었다. 설립 3년차이던 크래프톤이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에 직면한 시기였다. 자금이 바닥을 드러냈지만 매출이 본격화하지 않아 폐업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초기 투자로 크래프톤을 벼랑 끝에서 구해낸 케이넷은 12년 뒤 초대형 ‘잭팟’을 터뜨리게 됐다. 크래프톤이 지난달 상장하면서 지분가치가 1조1300억원이 됐다. 이미 현금화한 1300억원까지 포함하면 99억원이 1조2600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케이넷처럼 수십~수백 배 수익을 낸 벤처캐피털(VC)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3일 VC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에 투자한 케이넷과 IMM인베스트먼트, 알토스벤처스, 아주IB투자, 대성창업투자 등은 1000% 안팎의 평균 수익률을 냈다. 케이넷처럼 초기에 투자한 VC는 수익률이 1만%를 웃돈다.

크래프톤 외에도 최근 1~2년 사이 상장한 카카오뱅크, 하이브, 쿠팡과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당근마켓,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두나무(업비트), 야놀자 등에 초기부터 투자한 VC들은 대부분 수익률이 100배를 웃돈다. 배달의민족에 3억원을 투자한 본엔젤스의 최근 지분 평가액은 3000억원에 달한다. 카카오벤처스는 두나무에 42억원을 투자했는데 1조원으로 불어났다.

벤처 투자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스타트업 몸값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오르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당근마켓은 2019년 3000억원이던 기업가치가 올초엔 1조원 안팎으로 상승했고, 지난달 국내외 VC로부터 투자받으면서 몸값은 3조원이 됐다.

벤처캐피털협회 관계자는 “올해 대부분의 VC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기업 가치 산정(밸류에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유니콘기업 대부분은 e커머스(전자상거래)와 플랫폼 등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업체에 쏠려 있다. 특정 업종에 막대한 투자자금이 몰린 상황에서 시장 열기가 식으면 벤처 투자 시장 전체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