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제2의 쿠팡’ 신화를 쓸 한국 벤처기업으로 ‘야놀자’를 점찍었다. 2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숙박·여행 플랫폼으로 키워 미국에 직상장시킨다는 시나리오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이 이끄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는 한국 대표 숙박 플랫폼 야놀자에 2조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막바지 협상 중이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비전펀드는 야놀자 지분 25~30%를 확보하게 된다. 구주와 신주에 각각 1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비전펀드의 한국 벤처 투자 규모로는 쿠팡(약 3조35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시장에서는 1조원가량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두 배 수준의 ‘깜짝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다.

야놀자는 이르면 2023년 미국에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기업공개(IPO) 추진을 공식화하고 국내, 해외 상장을 다방면으로 검토해 왔다. 이번 비전펀드 투자 유치를 계기로 미국 상장으로 방향을 굳혔다. 투자업계에선 국내에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가 3조~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상장 땐 10조원 이상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출이 야놀자의 10배인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이 약 100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다.

손정의 '선구안' 또 통할까…'제2 쿠팡' 꿈꾸는 야놀자
"에어비앤비처럼 키워 美 상장"…기존 주주들 동의 여부가 관건

야놀자는 에어비앤비, 호텔스닷컴처럼 글로벌 대표 숙박·여행 플랫폼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번 투자자금으로 추가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다각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는 기존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영역에서 기업 간 거래(B2B)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2019년부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객실관리 자동화 시스템(PMS) 분야 등에 꾸준히 투자했다. 가람, 씨리얼, 이지테크노시스 등 국내외 1위 PMS 기업을 인수해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업계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투자 선구안이 또 한 번 발휘될지 주목하고 있다. 손 회장은 최근 쿠팡의 미국 뉴욕증시 상장으로 대박을 터트리며 투자업계에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그는 만년 적자이던 쿠팡에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억달러, 20억달러를 베팅했다. 투자 시점은 쿠팡의 기업가치가 각각 50억달러, 90억달러로 평가받을 때다. 두 번째 투자 당시가 현재 야놀자의 기업가치와 비슷하다. 쿠팡은 당시 2조원에 가까운 누적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야놀자는 처음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다는 차이가 있다. 야놀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별도 기준 매출 1920억원, 영업이익 161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43.8% 늘었고 영업이익은 62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이번 거래가 완전히 성사되려면 기존 주주들이 모두 보유 비율만큼 지분을 매각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기존 주주에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을 비롯해 부킹홀딩스,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뮤렉스파트너스, 아주IB투자, SBI인베스트먼트, SL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등이 있다. 야놀자가 2019년 GIC 등으로부터 마지막 투자금을 받을 당시 기업가치는 약 1조원이었다. 기존 투자자는 상당한 차익을 실현할 기회인 만큼 지분 매각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비전펀드의 국내 스타트업 투자는 이번이 네 번째다. 쿠팡(30억달러) 아이유노미디어(1억6000만달러)에 투자한 데 이어 최근 국내 AI 스타트업 뤼이드에도 1억7500만달러를 베팅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