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지닌 상품) 규모가 올 들어 3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증시 호황에 힘입어 발행 여건이 크게 개선되자 현금 확보에 한창인 기업들이 주요 자금 조달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자닌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거나 주식을 받을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기업들 CB·BW 발행 '러시'…증시호황에 3.2조 쏟아져
1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6일까지 국내 기업이 발행한 메자닌은 총 3조2442억원어치로 전년 동기(1조1708억원) 대비 177% 증가했다. 발행 건수도 96건에서 168건으로 대폭 늘었다. 이제 막 2분기가 시작된 시점에 발행 규모가 2017년 연간 수준 발행액(3조5294억원)에 근접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전체 발행금액이 지난해(8조2694억원) 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1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자닌 발행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증시 호황이다. 작년 초만 해도 라임자산운용의 금융사기 등에 따른 사모펀드 시장 위축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 등으로 메자닌 발행 여건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추락했던 증시가 가파르게 뛰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투자자가 권리행사로 얻는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적잖은 기업이 손쉽게 메자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대박’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CB 발행 사례로 꼽히는 현대로템(2400억원)과 HMM(2400억원)의 경우 투자자 대부분이 6개월도 안 돼 60% 이상 수익률을 내고 투자금을 회수했다. HMM은 최근까지도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어서 수익률이 100%를 넘는 투자자도 나오게 됐다. 두 기업은 대규모 CB를 발행한 지 얼마 안 돼 주식으로 바꾼 덕분에 재무구조 개선 효과도 톡톡히 봤다.

전문가들은 증시가 급격히 식지 않는 한 기업들의 메자닌 발행 열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신규 투자에 나서면서 메자닌 시장을 실탄 확보 창구로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지난 1분기 카카오게임즈(CB 5000억원), 티몬(교환사채 3050억원), 일동제약(CB 1000억원) 등이 잇달아 메자닌을 발행해 대규모 투자 자금을 확보했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기업까지 주가 회복을 발판 삼아 메자닌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16일 3000억원 규모 영구 CB 발행을 결정한 CJ CGV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오는 6월 영구 CB 투자자를 공모로 모집해 재무구조 개선에 필요한 자본을 쌓을 계획이다. 영구 CB는 발행회사가 추가로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만기가 정해진 일반 CB와 달리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메자닌 발행이 폭증하면서 증시의 유통물량 확대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기업들이 발행하는 메자닌의 대부분은 투자자가 권리 행사로 신주를 받는 CB와 BW다. 발행 기업이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면 오히려 대규모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에 눌려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