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뛰어든 실버개미…"테슬라 사달라" 새벽 전화도
서울 송파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73)는 4개월 전부터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지만 주변에서 공모주 청약을 통해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는 얘기를 들은 뒤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 것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금을 피해 집 한 채를 매각하고 보유하고 있던 현금 중 일부를 떼어내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은행 예금을 추가로 주식 계좌로 옮겼다. SK바이오사이언스, 크래프톤 등 공모주 투자에 활용할 계획이다.

70세 이상 ‘실버개미’가 크게 늘고 있다. 작년 주가 상승을 보고 새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고령 투자자들이다. 올 들어 지난 2월 중순까지 주요 7개 증권사에서 3만 명이 넘는 실버개미들이 주식 계좌를 새로 개설했다. 작년 한 해 70대 이상 개설자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한 증권사에서는 100세를 넘긴 초고령 투자자도 등장했다.
주식 뛰어든 실버개미…"테슬라 사달라" 새벽 전화도

한 달 반 만에 3만 명…작년의 40%

한국경제신문이 3일 대신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가나다순) 등 7개 증권사의 신규 고객 계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19일 기준 3만236명의 실버개미가 올 들어 새로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한 달 반 만에 작년 한 해 신규 고객 수(7만6250명)의 40%가량이 몰렸다. 2019년 한 해 신규 고객 수(2만9177명)는 뛰어넘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연간 신규 고객 수는 1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실버개미들의 투자 종목도 많이 달라졌다. 2019년 실버개미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아미코젠, 셀트리온헬스케어, 한올바이오파마, 씨젠, 헬릭스미스 등 바이오 기업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SK바이오팜, 셀트리온 등을 사들이며 포트폴리오 성격을 바꿨다. 코로나19 이후 반등장에서 ‘BBIG(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 업종이 증시 상승을 이끄는 것을 보고 주도주를 집중 매수했다는 분석이다. 올해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업종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현대모비스 등이 순매수 상위 종목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는 대부분 증권사에서 순매수 1위 종목을 차지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고령 투자자에게 가장 익숙한 기업이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며 “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은 배당수익률에 큰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면거래 선호, 해외주식 투자도 나서

한산했던 증권사 지점에도 방문 고객이 크게 늘었다. 조영환 신한금융투자 안산지점 부지점장은 “고령 투자자들은 비대면 거래에 익숙하지 않아 계좌 개설 문의는 물론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코스피지수가 3000을 돌파한 뒤부터 부쩍 바빠졌다”고 말했다. 고객이 지점 대기석을 가득 채울 때는 지점장까지 나서는 날도 많다고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했다. 실버개미 상당수는 모바일을 통한 투자보다는 창구나 전화로 주문을 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올해 달라진 점은 이들이 해외주식 투자에도 적극적이란 점이다. 지점 프라이빗뱅커(PB)들은 “유튜브나 신문 등 정보를 접하는 창구가 늘어나면서 해외 우량주가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9년 실버개미들의 해외주식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은 모두 기초지수 변동폭의 2~3배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이었다. 해외주식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형주보다는 초과수익을 누릴 수 있는 상품을 선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듬해에는 테슬라, 아마존, 애플 등 대형 기술주로 갈아탔고 올해엔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아크자산운용의 ‘아크 이노베이션 ETF’(ARKK)와 매년 배당을 늘리는 미국 에너지회사 ‘엔터프라이즈 프로덕츠 파트너스’(EPD)를 목록에 추가했다.

KB증권의 한 PB는 “오랜 기간 삼성전자, 포스코 등 국내 대형주 투자만 고집해오던 70대 중반의 한 고객은 언론에서 미국 주식 기사를 여러 번 접한 뒤 테슬라, 아마존 등을 매수하는 등 자발적으로 투자 영역을 넓혔다”며 “미국 시황을 수시로 확인하다가 새벽에 전화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경제/최예린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