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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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이 최근 코스피지수가 조정을 받는 기간에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인버스 상품을 매수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줄곧 “조정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을 냈는데, 정작 증권사 자신은 큰 폭의 조정에 대비하는 매매를 한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큰 폭의 조정에 대비하면서도 긍정적인 의견을 낸 건 문제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증권사 측은 “리서치센터 전망은 중장기를 전제로 낸 것”이라며 “기관들이 인버스 매수를 늘린 건 위험 회피(리스크 헤지)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기관, ‘인버스 ETF’ 순매수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투자가 가운데 ‘금융투자’(증권사)는 코스피지수 조정이 시작된 지난달 16일부터 29일까지 ‘곱버스(곱하기+인버스)’라고 불리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 상장지수펀드(ETF)를 246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기간 동안 금융투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이다. 2위 포스코(784억원)와는 순매수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 ETF도 전체 상장종목 가운데 열번째로 많은 13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KODEX 200선물인버스2X ETF는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면 일반 인버스 ETF의 2배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 ETF는 코스닥지수가 하락하면 1배 수익이 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기관투자가의 월별 순매수 20위권에 인버스 상품이 포함된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다. ‘금융투자’는 지난달 16일부터 29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710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운용사, 연기금 등을 포함한 전체 기관투자가로 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1조3162억원어치, 1조911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 기간 개인이 각각 1조8390억원어치, 1조3415억원어치를 사들인 것과 상반된다.

기관 “인버스는 위험 회피용”

코스피지수는 이달 15일(2443.58) 이후 24일(2272.70)까지 6.99% 하락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이 기간 지속적으로 “조정이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 증권사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과거 반등기에도 조정은 있었지만 여건의 큰 변화가 없으면 추세가 회복됐다”며 “이번 조정기를 성장주 매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증시 하락에 대비했다. 그러나 증권사가 일반 투자자에게는 증시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국민청원란에는 “증권사가 겉으로는 증시 상승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며 “개인을 속여서 기관이 팔아치우는 물량을 받아내도록 하는 게 아닌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이 올라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폭락하기 직전에도 증권사들은 낙관적 전망을 많이 냈다. 코스피지수는 2008년 5월16일 1888.88을 기록한 뒤 줄곧 하락해 그 해 10월24일 938.75까지 떨어졌다. 조정 초입에서 대형 증권사는 “조정은 단기간이고 대형주 중심의 상승 랠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주로 냈다. 그러나 폭락이 시작된 2008년 5월 한달간 기관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6767억원어치, 1513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증권사 측은 “개인을 속여서 이익을 취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자기자본투자(PI) 부서 의견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리서치센터는 장기 투자 의견을 내고, PI 부서는 단기적으로는 보유 종목이 올랐으면 적절한 시점에서 매도해 차익 실현하는 등 개별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을 취할 수 있다”며 “인버스 상품을 산 건 증시가 꼭 조정을 받는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