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최근 두 달간 3조원에 달하는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연간 목표치를 넘어서자 주가가 급등한 종목 위주로 차익 실현에 나서는 모습이다. 연기금은 연말까지 최대 8조원가량의 순매도 물량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어 연기금 보유 비중이 높은 종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두 달 새 3.1조 매도…상승 발목잡는 연기금

23거래일 연속 팔자

국민연금 등이 포함된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7월 16일 이후 두 달간 3조126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 순매수한 날은 6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7월 20일부터는 23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금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목표로 잡은 국내 주식 비중은 17.3%다. 이미 올 상반기에 17.5%를 기록해 목표치를 넘어섰다.

국민연금은 코로나 폭락장 이후인 4월부터 두 달간 16조8610억원 규모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증시가 폭락한 틈을 타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국민연금은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하반기가 되면 국내 주식을 더 사들이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올해는 이례적으로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팔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BBIG 수익 실현 나선 연기금

연기금이 올 들어 가장 많은 금액을 순매도한 종목은 카카오다. 연기금은 3663억원어치 카카오 주식을 팔았다. 카카오는 연초 대비 주가가 148% 뛰었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카카오 지분은 9.2%, 시장 가치는 1조2171억원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카카오 주가가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평가액은 3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거둔 만큼 그중 일부 주식을 팔아 수익 실현에 나선 셈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기금 특성상 목표수익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차익 실현을 위해 급등한 종목을 매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기금은 카카오 이외에도 올해 국내 증시를 이끌었던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관련주인 삼성SDI엔씨소프트도 각각 2075억원과 111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폭탄 매도 향후 영향은?

현재로선 연기금의 팔자 행진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대 8조원어치를 추가로 매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 연구원은 “연말까지 수익률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8조원 내외의 순매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연기금이 잇달아 주식을 매도할 경우 연기금 비중이 높은 종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종목은 295개다. 이 가운데 120개가 넘는 종목의 보유 비중을 올 1분기 이후 확대했다. 종근당홀딩스, 한올바이오파마, 금호석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연기금이 주가를 끌어올려온 만큼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올 들어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종목도 주의가 필요하다. 올 들어 연기금은 더블유게임즈 주식을 735억원어치 매수했다. 이 회사 시가총액의 5%가 넘는 액수다. 연기금은 F&F, 한독, 롯데관광개발 등도 연일 사들이며 종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했다. 일부 종목은 연기금의 매수세가 주가를 끌어올렸다.

개인투자자 영향력이 커진 만큼 연기금의 매도 행진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센터장은 “과거엔 기관 힘이 막강해 증시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지만 최근 장세는 개인 위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연기금 매도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