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그룹의 현금 보유 규모가 올 들어서만 45조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자 서둘러 현금을 끌어모아 곳간을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상장 계열사 중 이날까지 올해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101곳의 지난 6월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총 165조1230억원으로, 작년 말(120조6463억원) 대비 36.5% 증가했다. 불과 반년 만에 45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모든 그룹이 눈에 띄게 현금 보유 규모를 늘리고 있다. 가장 곳간이 두둑한 삼성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5조2931억원으로 이 기간 25.6% 증가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36조1096억원)의 증가율이 34.3%를 기록했다. 삼성카드(181.0%) 삼성증권(105.3%) 등의 현금 규모도 크게 늘었다.

최근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SK그룹과 포스코그룹의 현금도 대폭 증가했다. SK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5조182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4.2% 늘었다. SK하이닉스가 국내 일반기업 사상 최대인 1조6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고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시장의 최대어(공모규모 9593억원)인 SK바이오팜이 증시에 입성하는 등 주요 계열사들이 적극적으로 자본시장을 드나들며 대규모 유동성을 손에 쥐었다. 포스코그룹 역시 포스코가 올초 창사 후 최대인 15억달러(약 1조7800억원) 규모 글로벌본드를 발행하는 등 선제적인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7조4243억원)이 반년 동안 82.5% 증가했다.

이 밖에 현대자동차그룹(36.4%)과 현대중공업그룹(77.0%), 롯데그룹(25.5%), 신세계그룹(59.5%) 등 경기에 민감한 사업 비중이 큰 그룹도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