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 2위 시멘트 회사인 한일시멘트의 사무실과 오너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감독당국은 지난 5월 한일시멘트와 HLK홀딩스의 합병 결정을 앞두고 회사 측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세조종 혐의' 수사받는 한일시멘트, 오너 지분율 높이려 주가 떨어뜨렸나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전날 서울 서초구의 한일시멘트, 한일홀딩스 본사와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증거물 일부를 확보했다. 특사경은 허 회장을 비롯해 일부 임직원이 한일시멘트 주가를 인위로 조작한 혐의를 잡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사경은 지난달 패스트트랙(긴급조치)을 통해 해당 내용을 검찰에 통보한 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시작했다. 특사경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려우며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는 특사경이 최근 2년간의 한일시멘트 주가 하락과 현재 진행 중인 한일시멘트와 HLK홀딩스 합병 작업에 주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지난 5월 한일현대시멘트(옛 현대시멘트)의 모회사인 HLK홀딩스와 1 대 0.502 비율로 합병을 결정했다. 합병 예정일은 8월 1일이다. 한일시멘트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일홀딩스로선 한일시멘트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합병법인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2018년 7월 1일 인적분할을 통해 한일홀딩스에서 쪼개져 설립된 한일시멘트는 그해 9월 7일 16만7000원까지 뛰었지만 이후 장기간 내리막을 타며 합병 발표일인 5월 14일 8만3700원까지 주저앉았다. 허 회장은 지분 30.03%를 보유한 한일홀딩스를 통해 한일시멘트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일각에선 2~3년 전부터 시세조종이 이뤄졌을 것이란 의심도 있다. 한일홀딩스 주가는 인적분할 후 거래가 재개된 2018년 8월 6일부터 석 달간 55.5% 하락했다. 이 기간은 한일홀딩스가 주주들을 상대로 신주를 발행하고 그 대가로 주주들이 보유한 한일시멘트 주식을 받는 현물출자 방식의 유상증자(2778억원 규모)가 이뤄진 때다. 허 회장으로선 한일시멘트 주가가 올라가고 한일홀딩스가 싸질수록 유상증자 과정에서 한일홀딩스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한일시멘트 주가는 2018년 9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한일홀딩스 유상증자 직전까지도 분할 직전 수준을 유지했다. 당시 22.91%였던 허 회장의 한일홀딩스 지분율은 유상증자가 끝난 뒤 현재와 같은 30.03%로 상승했다.

압수수색이 알려지면서 이날 한일시멘트그룹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한일홀딩스가 4.09% 떨어진 4만4600원, 한일시멘트는 2.24% 내린 7만8600원에 장을 마쳤다. 한일현대시멘트(2만8200원)도 1.05% 하락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