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국내 초대형 투자은행(IB)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초대형 IB들은 지난 수년간 자본이 쌓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대체투자와 트레이딩 등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을 늘려왔다. 초대형 IB의 자본 건전성과 유동성이 취약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블랙스완’에 대처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위험투자 36% 늘었는데 자본은 19% 증가…대형 증권사 자본건전성 '적신호'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무디스는 전날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6개사를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렸다. 무디스는 “코로나19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 증권사들의 수익성과 자본 건전성, 유동성 등이 일제히 나빠질 것으로 본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무디스는 우선 초대형 IB들의 대규모 주가연계증권(ELS) 헤지(위험회피) 거래를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아울러 부동산 등 대체투자 관련 우발 채무가 크게 증가한 점도 주시하고 있다.

자기자본 투자를 대폭 늘려온 초대형 IB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27개 증권사의 총 위험액(연결 기준)은 2018년 말 17조9196억원에서 지난해 말 24조4565억원으로 약 36% 증가했다. 지급 여력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은 같은 기간 36조9725억원에서 43조9075억원으로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영업용순자본을 총 위험액으로 나눈 영업용순자본비율은 평균 206.3%에서 179.5%로 하락했다.

총 위험액은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시장 위험액과 우발 채무·대출채권 등 신용 위험액으로 크게 나뉜다. 신용평가사들은 초대형 IB들의 신용 위험액이 가파르게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해외 대체투자 등 우발 채무가 크게 늘었고, IB 인수금융 관련 대출채권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자본 건전성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의 작년 말 기준 영업용순자본비율은 148.9%로 1년 새 85.7%포인트 급락했다. KB증권(-34.4%포인트), 미래에셋대우(-17.1%포인트), 한국투자증권(-14.8%포인트), NH투자증권(-12.4%포인트)도 1년 전보다 후퇴했다. 이재우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고위험 투자 비중이 높은 초대형 IB의 자본 증가 속도보다 위험 노출액이 더 빠르게 늘어나면서 위기 발생 시 손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3개월 안에 갚아야 할 부채 대비 현금 등 유동성 자산을 얼마나 보유했는지를 뜻하는 유동성비율도 5개사 모두 150%를 밑돌았다.

하지만 신용위험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초대형 IB 관계자는 “상당수 부동산 PF 대출은 선순위고 담보인정비율(LTV)도 50%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주로 회사채보다는 기업어음(CP)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하락한다고 해도 당장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