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계획에도 불구하고 기업어음(CP) 금리가 7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당장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이 계속해서 CP를 높은 금리(낮은 가격)에 발행·판매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증권사 신용등급 강등 검토에 나섰다.

26일 금융투자협회가 고시하는 CP 91일물(A1등급 기준) 금리는 전날보다 0.17%포인트 급등한 연 2.04%를 나타냈다. CP 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인 지난 17일 연 1.36%였지만 이날까지 7거래일 동안 0.68%포인트 급등했다.

CP 금리 급등…증권사 신용등급 '불안'
한 증권사 단기자금운용 담당 임원은 “아직까지 자금 시장에 충분한 돈이 흘러들지 않고 있다”며 “대형 증권사들은 3개월 단위로 만기가 돌아오는 수조원대 CP 물량을 롤오버(새 CP를 발행해 기존 CP를 상환)하기 위해 같은 금액의 CP를 헐값(높은 금리)에라도 팔아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CP 발행 잔액은 25일 현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전자단기사채를 포함해 총 250조원이다. 이 중 절반인 126조원 규모 ABCP의 경우 대부분 증권사들이 3개월 단위로 롤오버한다.

신평사들은 증권사의 유동성이 크게 나빠졌다고 판단하고 신용등급 강등 검토에 들어갔다. 한국기업평가는 25일 증권업 전체 등급 전망을 기존 ‘중립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국내외 주가 급락에 따른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 부담 증가, 단기자금 시장 위축에 따른 유동성 부담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제시했다.

한은이 이날 금융회사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RP는 증권사 보유 국고채와 공사채를 담보로 잡고 단기자금을 내주는 것인데 그런 우량채권은 이미 다 팔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24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마련하는 자금 중 일부를 증권사와 캐피털사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