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증권사들의 독무대가 됐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하는 등 부동산 시장 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어 문제다. 금융당국이나 신용평가사도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우려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증권사 부동산PF의 현황과 위험요인을 살펴보고,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위험)과 마주치지 않을 방안을 알아본다.[편집자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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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후속 조치도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증권사들의 부동산PF 역시 위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증권사들은 다가올 위험에 대비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부동산PF의 핵심위험인 '상환순위'나 증권사가 인수 후 재매각(셀다운)하지 못한 '미매각자산'이 베일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악화시 중후순위 대출 위험↑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의 채무보증(우발채무) 규모는 분·반기보고서 또는 감사보고서 등을 통해 공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채무보증 중 부동산PF 관련 우발채무, 신용공여 여부, 신용공여의 상환순위 등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는 증권사는 없다. 공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 채무자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증권사가 이를 대신 갚는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특히 담보인정비율(LTV)이 높고 상환순위가 뒤에 있는 중·후순위 대출에 대한 보증일 경우 위험도가 더 높다.

현 공시체계에서는 증권사의 채무보증 중 부동산PF만을 골라내기 어렵다. 부동산PF 중 증권사가 대출 미상환 금액의 일부 및 전체를 책임지는 신용공여의 여부를 정확히 추산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부동산PF 관련 채무보증은 유동성공여와 신용공여의 나누는데, 유동성 공여의 경우 신용등급 강등과 같은 신용이슈가 발생했을 때 증권사의 매입 및 상환 의무가 없어진다. 신용공여는 이와 관계 없이 최종 책임을 지기 때문에 위험도가 더 높은 것이다.

금융당국도 현 상황에서 증권사 부동산PF의 현황 파악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상헌 금융감독원 건전경영팀장 "사업보고서나 반기보고서 등 사실상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 증권사들의 부동산PF 신용공여 항목을 추출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증권사 부동산PF에 대한 위험도를 금감원이 평가하는 건 무리다"고 말했다. 이어 "연초 부동산PF, 부동산 그림자 금융과 관련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방향은 잡았지만 현재 큰 진척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신용평가사에서는 실제적 위험도 측정을 위한 시도를 최근 들어 시작했다. 신용공여 여부, 상환순위, 지역 및 물건별로 위험도를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증권사들의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들 역시 어려움을 호소했다.

NICE신용평가는 증권사 부동산PF에 대해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 및 증감률, 우발채무에 대한 지역별, 물건별 위험도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는 시공사의 신용보강 여부, 수분양률, 제공된 담보의 LTV, PF 우발채무의 상환순위, 시공사 이외의 신용보강자 존재 여부 등 거래구조 및 사업 현황에 따라 위험도를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필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부동산PF에 대한 위험도를 측정하고 싶어도 미공시 사항이라 증권사 쪽에서 중후순위와 지역별, 물건별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공시보고서의 채무보증 수치들도 주식 관련이 포함돼 있어 부동산PF만을 따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산정에 있어 유동성공여와 신용공여에 똑같은 위험가중치를 두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용공여는 위험가중치를 더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용상 선임연구위원은 "유동성공여와 신용공여의 위험액 산정에 있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더 높은 신용공여 위주로 채무보증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신용공여에 대해서는 차별화 방안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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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부동산 투자에 미매각자산 '골치'

증권사들의 신용공여 증가와 함께 인수한 부동산의 미매각도 문제시된다.

국내 일부 증권사들은 국내외 부동산을 인수한 후 재매각하지 못했거나 매각해야 하는 자산이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 역시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 업계에서는 하나금융투자의 미매각자산이 1조원 규모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미매각자산은 공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어제까지는 미매각자산이었다가 당장 오늘 매각될 수 있기 때문에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수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면 증권사들이 이를 보유하게 된다. 그만큼 자본이 묶여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증권사들의 부동산PF 만기도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늘어나고 있는 증권사들의 회사채 발행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올 상반기 미래에셋대우가 1조6940억원, KB증권이 7500억원, 메리츠종금증권이 5100억원, NH투자증권이 5000억원 등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증권사들은 또 최근 중위험·중수익 투자처에 목마른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 2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마중가타워를 인수했고 한국투자증권은 프랑스 파리 투어유럽빌딩 인수에 성공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달 하나금융투자 NH투자증권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5성급 호텔 '힐튼 비엔나' 건물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해외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국내 증권사간 과열 경쟁으로 같은 매물에 여러 국내 증권사들이 동시 입찰해 인수 가격이 올라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무리해서 고가에 인수할 경우 재매각이 힘들 뿐만 아니라 매각시에도 가치하락에 따른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을 현지 업체들을 제치고 사들이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며 "예상 수익률을 낮게 가지고 들여올 수밖에 없고 팔 때도 싸게 팔아야 되는데, 기대 수익률이 낮으면 누가 사겠냐"고 했다.

해외 부동산 인수를 위해 공모펀드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들에게 폭탄을 돌리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는 운용수수료만 받으면 되기에 투자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은지/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