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밖으로 눈 돌려 11개 유니콘 발굴"
“향후 1년간 한국 스타트업 약 15곳에 신규 투자할 계획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인 500스타트업을 이끄는 크리스틴 차이(사진) 대표는 “한국 벤처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다”며 이같이 밝혔다.edgeE

500스타트업은 4억5000만달러 규모 펀드를 운용하는 글로벌 큰손이다. 세계 74개국 2200여 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10년 설립돼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11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발굴해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차량공유서비스 그랩,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프로그래밍 관리도구 제공업체 깃랩, 구글이 사들인 소셜미디어 마케팅회사 와일드파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차이 대표는 구글과 유튜브를 거쳐 2010년 동료들과 함께 500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차이 대표는 “처음 우리가 회사를 설립할 때는 많은 사람이 실리콘밸리 바깥에 좋은 스타트업이 과연 있을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실리콘밸리의 통념을 깼다.

“세계 각국에 좋은 스타트업이 있지만 자본금과 멘토십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결핍을 우리가 메워준다면 성과가 날 것이라고 믿었죠.”

차이 대표는 남보다 한 발 앞서 글로벌 투자를 시작한 걸 500스타트업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실리콘밸리를 넘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깔려 있는 네트워크가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VC도 모두 네트워킹, 멘토십 등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세계 어디서든 존재감이 있는 VC는 많지 않아요. 남보다 앞서 글로벌 투자에 나선 덕택이죠.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VC를 찾을 때면 우리를 한번쯤 떠올릴 겁니다. 그게 우리를 차별화하는 요인입니다.”

차이 대표는 최근 500스타트업의 투자 트렌드를 ‘딥테크’로 제시했다. 딥테크는 실제 산업 현장의 수요에 깊게 관련된 전문 기술을 뜻한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하는 우주선 관련 스타트업, 농업 현장에 사용할 수 있는 드론 개발 스타트업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우리가 그 분야의 최첨단 연구를 하고 있진 않지만 대단히 학술적으로 진행돼온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노하우를 제공한다”고 했다. 예컨대 홈페이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잠재적인 고객을 어떻게 찾고, 고객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등을 안내하고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500스타트업은 3~4개월에 한 번 30~40개 회사를 골라 키우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마다 수천 건의 지원서류가 쏟아진다. 이 가운데 채택되는 비율은 2% 미만이다.

차이 대표는 “어떤 스타트업은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와서도 자신들이 뭘 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수많은 지원업체 가운데 뽑히기 위해선 지금 무엇이 문제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며, 누가 고객이 될 것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500스타트업은 2015년 한국에 진출해 스푼, 피플펀드, 자란다, 버튼수프 등 30여 개 회사에 투자했다. 그는 오는 24일 산업은행이 서울 코엑스에서 여는 벤처·스타트업 행사 ‘넥스트라이즈 2019 서울’에 주요 연설자로 참가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