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자동투자 제도)’ 도입이 사실상 좌절되자 자산운용업계는 적잖이 실망하는 분위기다. 투자자금 이탈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공모펀드 활성화가 더욱 요원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주식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65조566억원(상장지수펀드 포함)으로 집계됐다. 설정액 규모는 7년 전(91조9048억원)에 비해 약 30% 줄었다. 올 들어서도 2조6318억원이 빠져나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금이 반토막 났던 ‘트라우마’의 영향도 있지만 증시를 떠받쳐줄 기관투자가들의 자금력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은 “미국에서는 퇴직연금을 기반으로 한 기관투자가의 주식 투자 비중이 월등히 높다”며 “시장 참여자의 전문성이 높다 보니 수익률도 꾸준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디폴트 옵션 도입을 통해 매달 꼬박꼬박 적립되는 퇴직연금의 증시 유입이 한국 증시의 악순환을 깰 절호의 기회였는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도 “국민 건강을 위해 국민 전체를 의사로 만들 수 없듯이 근로자들이 모두 펀드매니저가 될 순 없다”며 “퇴직연금 개혁을 위해 디폴트 옵션은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디폴트 옵션을 도입해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늘리면 중장기적으로 연 3~6%포인트 수익률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갈수록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자산운용업계는 디폴트 옵션 도입에 희망을 걸었다. 서유석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주식형 혼합형 등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높이는 것이 공모펀드를 살릴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은 “미국은 퇴직연금의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업을 성장시켜 국민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며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에 방치돼 있고 주식형 공모펀드가 고사해가는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 경제에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적배당형 상품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도입해 디폴트 옵션 도입에 따른 반발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